본관은 밀성(密城: 경산남도 밀양시).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박함(朴諴)이고, 어머니는 음평군부인(陰平郡夫人) 안씨(安氏)이다. 부인은 김제군부인(金堤郡夫人) 조씨(趙氏)이며 5남 2녀를 낳았는데, 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였다.
1278년(충렬 4) 전리사서원(典理司書員)을 거쳐 전주 임피현위(全州 臨陂縣尉)에 임명되었다. 임기가 끝난 뒤 내시(內侍), 판적요직(板積窯直), 공역령(供驛令), 사온서령(司醞署令), 자운방판관(紫雲坊判官)을 거쳤다. 1310년(충선왕 2) 사헌규정(司憲糾正)에 임명되고,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로 나가 오래된 문서를 조사하고 적발하였으나 탄핵을 받고 해임되었다. 1316년(충숙왕 3) 장남 박인간(朴仁幹)이 원나라에 체류 중인 충선왕의 관저에서 근무하게 되자, 선부산랑(選部散郞)으로 기용되어 지경원부(知慶源府)로 나아갔다. 얼마 뒤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하였다. 1324년(충숙왕 11)에 박인간이 충선왕을 따라 토번(吐蕃)에서 돌아오자 다시 기용되어 광주목사(廣州牧使)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에 통헌대부 밀직부사 상호군(通憲大夫 密直副使 上護軍)으로 은퇴하였다.
박화는 전반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물러 있다가 만년에 장남이 귀해짐에 따라 높은 관직에 오르고 후한 녹봉을 받게 되었다. 1336년(충숙왕 복위5)에 85세로 사망하자, 개경 동쪽 대덕산(大德山) 감은사(感恩寺)의 북쪽 기슭에 장례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