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감문위상호군, 판전의시사, 전법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삼사좌윤(三司左尹)을 거쳐 보흥고(寶興庫)의 관리로 재직하면서 회계처리를 엄정하게 하여 칭송받았다. 1349년(충정왕 1)에 다수의 추천으로 대신(臺臣: 臺官)으로 선발되어 집의(執義)로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 명성을 떨쳤다. 1350년(충정왕 2)에 판소부시사 지전법사사(判少府寺事 知典法司事)가 되었다. 1355년(공민왕 4)에 감문위상호군(監門衛上護軍)을 거쳐 복주(福州, 경상북도 안동시) 목사(牧使)가 되어 임지에 나아갔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紅巾賊)이 침입하여 왕이 복주로 피난하자, 필마(匹馬)로 왕을 수행하면서 경상도 점군병마사(慶尙道 點軍兵馬使)가 되었다. 이어 서울을 수복한 뒤 경성수복2등공신(京城收復二等功臣)에 책봉되었다. 1364년(공민왕 13) 봉익대부 판전의시사(奉翊大夫 判典儀寺事)가 되었으며 1372년(공민왕 21)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올랐다. 1374년(우왕 즉위년) 파평군(坡平君)에 책봉되었고 관계(官階)는 대광(大匡)이 주어졌다. 1376년(우왕 2)에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이듬해 송림현(松林縣)에 장례지냈다.
참고문헌
- 『목은문고(牧隱文藁)』
- 『고려사회와 문벌귀족가문』(박용운, 경인문화사, 2003)
- 「윤해 묘지명」(김용선,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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