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주(東州, 鐵圓). 자(字)는 소우(昭于).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최유청(崔惟淸)의 증손자이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종준(崔宗峻)의 아들이다.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김공(金公)의 딸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달에 오래 살지 못할까 염려되어 속언(俗諺)에 따라 거적[苫]으로 싸서 길가에 버렸다. 사촌누이가 거두어 길렀으므로 어렸을 때 이름을 소점(小苫)이라고 하였다. 문음(門蔭)으로 벼슬하여 양온령동정(良醞令同正)이 되었다. 이후 경선점녹사(慶仙店錄事)와 재관(材官)을 거쳐 궁궐에 들어가 내시(內侍)로 임금을 모셨다. 22세인 1229년(고종 16)에 감문위섭산원(監門衛攝散員)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개성 서쪽의 황봉산(黃鳳山) 남쪽 기슭에 장례지냈다.
최광 묘지명은 현재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묘지명은 그 작성시기를 고려 개국(開國)을 기준으로 하는 연대표기 방식을 사용한 점이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