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연 31행의 자유시이다. 1930년 4월『학생』에 「너무도 슬픈 사실」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1940년 박문서관에서 출간한 첫 시집 『여수시초(麗水詩抄)』에 게재되었다.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1930년대 박팔양의 현실인식과 자연의 생명의식에 민중적 서사성을 구현하려는 형식적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적 구성은 크게 둘로 나뉜다. 자연의 일부로서 진달래의 속성(1∼4연과)과 그 속성을 닮은 한국민중의 선구자적 면모(5∼7연)이다. 이 두 자질의 병치를 통해 식민지 치하 고통 받는 민중의 희생과 수난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미래를 위해 예고된 성스러운 예언자적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전환과 역전의 형식적 구조를 통해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갈 수 있음을 의연한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이 시의 전개 상황을 살펴보면, 1연에서 시인은 ‘속절없이 떨어지는’ 진달래의 한계상황을 어쩔 수 없는 자기현실로 인식하고 있다. 2연에서는 그러한 수세적 양상을 백일홍과 국화의 화려함과 강한 생명력과 대비시켜 극도의 자기부정을 강화시킨다. 격한 감정에 빠져 울던 시인은 3연에서 진달래의 선구자적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4연에서 봄의 찬란한 시절이 오기 전에 미리 피어 봄을 맞는 그 생명의 예언자적 풍모를 예찬한다. 진달래는 도래하지 않는 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가늠할 수 있는 자연 섭리의 실체로 승화된다. 시인은 하찮은 진달래의 형상에서 고귀한 뜻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불행한 수난’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부정을 부정으로 극복하는 역설의 인식이다.
이러한 진달래의 자기극복적인 선구자적 면모는 5연에서 ‘우리 선구자들’의 모습으로 전이된다. 시인은 비로소 왜 진달래를 시적 대상으로 삼았는지 드러내고 있다. 진달래와 같은 모습으로 피고 졌던 민중의 수난과 희생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표시한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민중성의 핵심을 담는다.
이 시는 민족적 수난의 의미와 민중저항의 당위성을 서정적 전개를 통해 설득적으로 펼침으로써 카프 시대 여타 작품과 비교하여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