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21.0(cm), 102면. 1978년 일지사(一志社)에서 발행하였다. 시인의 자서가 ‘책 머리에’라는 표제로 실려 있고, 황동규가 시 해설을 했다. 2부로 나뉘어 40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2005년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이때 해설은 허혜정이 맡았다.
이 시집은 감태준의 첫 시집으로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확장된 도시화화 농촌의 몰락을 감각적인 시선으로 포착하였다. 특히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소외현상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도시 주변인들의 삶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재조명하였다.
시집의 구성은 2부로 나뉘어 제작역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시집 전반부에는 ‘서울’의 공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단순히 소재로서 서울살이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황동규의 해설에 따르면 감태준의 서울은 본질이 주어지지 않은 공간이다. 이러한 정황들이 1부에 실린 시「선(線)은 살아」,「귀향(歸鄕)」,「몸 바뀐 사람들」,「내게 묻는 말」등의 시편에 담겨있다. 이들 시편들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체득하게 되는 선입감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오직 시인이 체험하고 감각했던 기억의 편린들이 반복적으로 제시됨으로써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소외된 존재성이 부각된다.
도시와 함께 이 시집에 등장하는 공간은 ‘바다’이다. 감태준의 초기시에서 지배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 이미지가 시집의 2부를 차지하고 있다. 「내력(來歷),「길」,「죄인(罪人)」,「북두칠성이 빛날 때」등의 시편들이 여기에 속한다. 바다는 도시와 함께 이 시집의 배경을 이루는 자질로서 도시 생활로 상실하게 된 원초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상실을 감태준은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에서 재구성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주변성은 비인간적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근대화의 그늘로 상징화된 도시의 모습은 황폐화된 공간으로 비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보편성에서 벗어나 감태준은 도시와 바다라는 두 공간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잃어버린 원체험을 서울이라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 찾아내 복원한다. ‘몸이 바뀌었다’는 것은 공간의 이동에 지나지 않을 뿐 몸 안에 내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감태준은 이러한 진리를 이 시집에서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이 시집은 1970년대 도시를 주제로 삼은 여타 시들과 달리 성토나 분노에 싸여있지 않고 도시의 이면을 삶의 연속이라는 측면에서 차분하고 안정된 시선으로 포착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