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정현종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그 전까지의 작품들이 현실과 꿈의 갈등을 노래하고 있다면 이 시집을 기점으로 자유와 생명성에 천착하여 세계와의 화해를 지향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시집에는 「상품(商品)은 물신(物神)이며 아편」, 「문명의 사신(死神)」과 같이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귀신처럼」에서는 정치적 폭력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고, 「모든 사이는 무섭다」, 「회심(回心)이여」에서는 인간성 상실과 생명성의 결핍을 고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에서는 경제 · 정치 · 사회적인 모순과 부조리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에서 이러한 비판은 비판으로 그치지 않는다. 정작 이 시집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부분은 시적 자아가 소소한 사건이나 사물을 관찰하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성의 충일을 발견해 내고, 자연과의 활발한 동화를 통해 자유에 대한 의지를 발현하는 때이다. 자유와 해방에 대한 의지가 발현된 작품으로는 「새한테 기대어」나 「내가 잃어버린 구름」을 들 수 있으며, 「새로 낳은 달걀」, 「이 열쇠로」나 표제시이기도 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등은 생명의 충일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에서 시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자유로운 우주적 상상력 안에서 만물과 교류하며 자유, 평등, 생명성에 대한 정신을 올곧게 전개해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