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세계의 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그해 창작과비평사에서 1∼3권이 간행된 이후, 1988년에 4∼6권이, 1989년에 6∼9권이 각각 간행되었다. 1996년에 10∼12권이, 1997년에는 13∼15권이 각각 간행되어 2010년 4월에 30권으로 완간되었다. 1989년까지 간행된 시집으로 제3회 만해문학상과 제12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는 중앙문화대상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1970년대의 다양한 사회 참여 활동으로 인해 고은은 수차례 구금되고 수감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는다. 1980년 5월 17일 강제 연행된 고은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1981년대구교도소로 이감되기까지 창이 없는 독방에 수감된다. 『만인보』는 이 시기에 처음 구상한 것으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순에 따라 내용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보자면 대체로 이러하다. 총 30권 중에서 6권까지는 “우선 내 어린 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는 시인의 말 그대로, 고향사람들을 추억하는 내용들이다. 7권에서 12권까지는 1950년대, 13권에서 20권까지는 1970년대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21권에서 23권은 1960년대 초, 4·19와 5·16의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으며 24권에서 26권으로 와서 신라에서 근세까지의 불승들의 행적을 들추고 있다. 27권에서 30권까지의 마지막 네 권에서는 1980년 5월의 광주에 관련된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전언한 바와 같이 『만인보』가 시순에 따라 정연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각권 내에는 박지원의 시종인 「창대 장복」이라든가,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 고종시대 궁궐의 무희 「리진」등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도 불쑥 불쑥 등장하고 있다. 또한 가까운 시기로는 박중빈이나 문선명과 같은 종교계의 거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그려지기도 했다.
『만인보』에는 시인의 의도대로 그의 인상에 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애정 어린 시선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전형적인 민중의 모습을 띠고 있거나 혹은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다고 인식되는 소외된 군상들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모두 실명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각각의 인물들에서 민중이 지닐 수 있는 성격과 특징들을 이끌어냄으로써 이들의 주인됨과 건강성을 예리한 각도로 짚어내고 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시인은 그들이 곧 우리의 피붙이이자 역사의 주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한다. 아울러 민중의 애환은 곧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보여주고자 한다. 『만인보』를 관류하고 있는 시의식은 바로 이러한 사회현실과 관련된 인간 삶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만인보』는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라는 것과 총 작품 수 4001편, 등장 인물 5,600여명에 이르는 대작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비록 수상에는 실패하였으나 이 작품으로 시인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계속 거론되어 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만인보』에는 인간 삶의 무수한 구체성을 통해 근대의 제반 문제에 대한 비판과 그것에 대한 극복의지가 잘 드러나 있으며, 그 기저에는 자유와 해방, 민주와 민족의식에 대한 사상을 포괄하는 시인의 불교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