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은 고은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고은의 허무지향적 초기 시세계가 변모된 것은 1974년 상재된 『문의(文義)마을에 가서』에 이르러서이다. 대체로 이를 기점으로 초기와 중기를 구분하고 있으며, 이 시기 변화의 계기에는 고은에 따르면 전태일의 죽음이 놓여 있다. 전태일의 죽음은 고은에게 삶의 다른 형태, 혹은 죽음의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자 시인이 사회와 현실로 투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그의 시적 경향에 있어서는 과거의 내면적이고 감상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현실인식의 것으로 변모되는 과정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의 작품부터는 초기의 몽롱하고 막연한 언어가 논리적이면서 생생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대체되어 표출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모된 모습은 『입산』, 『새벽길』에 이르면 더욱 안정적인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특히 『새벽길』은 이러한 계열의 시들 중에서도 중기시의 절정이라 할 만큼 완숙한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1978년에 상재된 제6시집 『새벽길』은 중기 시세계의 연장선에 위치하지만 제4, 5시집에서 보였던 산문화된 진술이 다소 지양되고, 완결되고 효과적인 시적 상징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살」이라는 시는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살」은 1970년대 최고의 저항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고 혁명적 낭만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시인의 투쟁의지가 관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는 강한 신념에 근거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죽음을 다하여 투쟁하고자 하는 시인의 실천 의지는 작품 「인당수(印塘水)」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이 시가 의미를 갖는 것은 초기의 허무주의로부터의 이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그 허무주의를 유발시켰던 원인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적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쟁과 그로 인한 분단 상황에 대한 개선, 그리고 그러한 개선 의지를 가로막는 독재 정권에 대한 투쟁을 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