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효 ()

현대문학
인물
일제강점기 카프 ‘신건설사건’과 관련된 계급문학운동가.
이칭
이칭
이금동(李金童), 이응종(李應鍾)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2년(고종 39)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서울
관련 사건
카프신건설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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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카프 ‘신건설사건’과 관련된 계급문학운동가.
개설

본명은 이금동(李金童)이며, 이응종(李應鍾)이라고도 불렀다. 1920∼30년대 각종 강연, 잡지 발간 및 조직 활동을 통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문학운동에 투신하였다.

생애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매우 가난하여 보통학교를 중퇴했다. 1915년 인쇄소 견습공이 된 이래 여러 신문사에서 인쇄직공으로 근무했다. 1922년 9월 송영, 김홍파, 김두수, 최승일, 김영팔, 이호, 박세영 등과 함께 사회주의 문화운동단체인 염군사(焰郡社)를 결성하였다. 이적효를 대표로 잡지 『염군』의 창간호 편집을 마쳤지만 압수당했다. 1925년 경성출판노동조합과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 집행위원이 되었다. 또한, 한양청년연맹(漢陽靑年聯盟)의 결성과 반기독교 강연활동에도 참여하였다. 1925년 8월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창립에 가담하였다. 1926년 2월 경성청년회(京城靑年會) 집행위원이 되었다. 무산대중을 위한 잡지 『해방운동』의 동인으로 정간된 잡지의 속간을 위해 노력했다. 1927년 월간 잡지 『노동자』 발간 준비 작업에 참여했다. 1929년 함흥청년동맹대회 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되었다.

1930년 4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기술부를 신설하게 되자, 영화부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2월에는 조선공산당재건공작회(朝鮮共産黨再建工作會)에 가입해 조선공산당 재건에 앞장섰다. 1931년 1월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朝鮮左翼勞動組合全國評議會) 조직준비회 정치부 담당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이해 2월 기관지 『산업노동』 발간 책임자가 되었으며, 3월 조선좌익노조 전국평의회 조직준비회 산하 조선적색위원회 서울지역 책임자로 내정되었다. 경성청년회 집행위원으로 있던 1931년 4월경 신철, 정종명과 함께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념하여 전날 서울에서 일제히 공장이나 노동자들이 모이는 장소에 격문을 뿌려 노동운동을 선동하기로 계획하였지만 사전에 발각되었다. 또한 1931년 양창준, 민병휘 등과 함께 카프 중앙위원회의 노선에 대항하여 카프 개성지부를 중심으로 카프쇄신동맹을 결성하여 기관지 『군기』를 장악하였던 일로 인해 카프에서 제명당했다. 1931년 4월 ‘조선국내공작위원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34년에도 카프 ‘신건설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았고, 수감 중 옥사했다.

활동사항

1923년 12월 발간 예정이던 『염군』 창간호에 소설 「지새는 새벽에 어린애 죽었어요」가 실렸다고 전해진다.

상훈과 추모

2007년 국내 항일 운동의 공적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분화와 심화, 그리고 어둠 속의 풍경들』(염무웅, 민음사, 2007)
『한국계급문학운동사』(권영민, 문예출판사, 1998)
『동아일보』(1933.4.28일자 2면)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데이터베이스)
집필자
장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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