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2년 서병오(徐丙五, 1862∼1935)가 대구 지역 서화계의 교류와 교육을 위해 개설한 기관.
설립목적
변천
1922년 5월에 회원들의 첫 전람회가 열렸고, 1923년 11월에는 더욱 규모를 확장하여 대구미술전람회로 열렸다. 서병오는 제1회(1922)부터 조선미술전람회의 동양화부 심사위원이 되면서 대구 지역 서화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교남시서화연구회 소속의 배효원, 서동균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에 등단했다.
교남시서화연구회는 1932년에 10주년 기념전람회를 열었으며, 1933년에도 ‘서화즉매회(書畵卽賣會)’를 열어 수익금을 영남 수재민 돕기에 내는 등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서병오의 사후에는 제자 서동균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으며, 해방 후 1953년에 교남서화회(嶠南書畵會)를 영남서화회(嶺南書畵會)으로 개칭한 후 계속해서 영남 지역 서화계의 맥을 이었다.
기능과 역할
참고문헌
- 「석재 서병오(1862∼1836)의 서화연구」(김지영,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석재 서병오(1862∼1936)와 ‘교남시서화연구회’의 재인식」 (이인숙, 『민족문화논총』45,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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