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바탕에 채색. 세로 233㎝, 가로 162㎝.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안상철(安相喆)은 화단 데뷔 초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에서 특선을 거듭하며 신예작가로 주목받았다. 이 「맑은 날[晴日]」은 그의 국전 특선작인 「밭[田]」(제5회 문교부장관상, 1956), 「정(靜)」(제6회 문교부장관상, 1957), 「잔설(殘雪)」(제7회 부통령상, 1958)에 이은 네 번째 특선작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당시 국전에서 「맑은 날」은 “새로운 소재, 새로운 구도로 한국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안상철은 1950년 24살 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여 1953년에 조기 졸업을 하였다. 졸업 후 그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금성중학교와 부산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다가 1956년부터 서울 덕성여자중고등학교로 옮겼는데, 그의 국전 대표작은 이 시기에 모두 제작되었다. 특히 대학 동기이자 직장 동료였던 하인두와 김서봉과는 “덕성 3총사”라 부를 만큼 각별한 친분이 있었는데, 모두 서양화가들이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회화과 동기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서양화가들과의 교류는 자연스러웠다. 1960년 제9회 국전에 추천작가가 되면서부터 평면 추상을 시도하거나, 나무 등 오브제를 이용한 입체표현을 하는 등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배경에는 그들과의 교류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맑은 날」은 실경산수의 맥을 이었지만 중국 수묵화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고 동양화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가 나름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고자 했던 결과이다. 그림 속 풍경은 관악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벼를 베어 말리는 정경을 화면 가득히 그렸다. 일반적인 동양화와 달리 여백을 두지 않은 독특한 구도는 그의 이전 국전 특선작들에서부터 이미 시도되었으며 높이 평가되는 부분이다. 소재상으로도 명산대천의 수려한 산수를 그리던 당시 화단의 추세를 탈피하여 소박한 풍경의 일면을 관찰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초기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