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바탕에 채색. 가로 130㎝, 세로 162㎝. 1974년 홍익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하고 전업작가가 된 천경자(千鏡子)가 1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작품을 완성한 해인 197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에 출품했다. 제목인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이 해가 천경자 자신이 만 49세가 되는 해였고 아프리카 여행을 떠올리며 붙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2년 뒤인 1978년에 같은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자서전의 표지는 「수녀 테레사」(1977)였는데, 이 작품 또한 그녀의 자화상이었을 것이다.
1961년에 국전의 추천작가가 되었고 국내외에서 개인전 및 수필집을 출간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던 천경자는 1972년에 월남전 종군화가단의 일원으로 전쟁기록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1974년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제작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Kilimanjaro) 산을 배경으로 초원 위에 여러 동물들을 그려 넣고, 코끼리 등 위에 웅크리고 앉은 나체 여인을 그렸다.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 한 것을 보면, 50대에 들어선 중년 여인의 상념과 회고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자서전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즈음에 국전 운영위원이 되었고, 『계간미술』에서 평론가들이 뽑은 동양화 10대가로 선정되는 등 작가적 입지를 견고히 다졌다. 틈틈이 인도, 남미로 여행을 떠나며 많은 기행문을 쓰고 풍물전을 열었으며 여러 권의 수필집도 출간했다.
비슷한 제목을 붙인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1977년작으로 천경자의 작품에 보이는 상징적인 모티브, 즉 여인, 꽃, 뱀이 등장하는데 이 때의 ‘22’도 나이를 말하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여인의 로맨틱한 정서가 묻어나며 한(恨), 고독, 화려한 슬픔 등 그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작가 자신이 자화상이라 불렀다.
천경자는 1980년에 ‘인도, 중남미 풍물전’을 연 이후 1995년까지 개인전을 열지 않았고, 이 사이에 화단을 떠들썩하게 한 소위 ‘미인도 진위공방(미인도 사건)’이 있었다. 미술계에 환멸을 느껴 1991년 4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에 가 있었지만, 귀국 후 다시 붓을 잡았고 1995년 15년만에 개인전을 여는 등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