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경 윤영기(尹永基)가 평양에 설립한 서화교육기관으로 김윤보(金允輔), 김유탁(金有鐸), 임청계(任淸溪), 노원상(盧元相), 양영진(梁英眞) 등 평양 지역 서화가들이 참여했다.
1911년 근대기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인 경성서화미술원을 창설한 윤영기는 운영기관으로 부설된 서화미술회의 회장이 된 이완용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자 평양에 기성서화미술회를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경성서화미술원과 마찬가지로 서화교육과 전람회 등을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윤영기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을 이은 서화가로 기성서화미술회에서 묵란을 가르쳤으며, 임청계와 노원상이 서법, 김윤보와 김유탁이 산수와 묵죽을 가르쳤다. 여학생도 받아 들여 평양의 기생인 김월희(金月姬), 함인숙(咸仁淑), 임기화(林琪花), 낭헌(琅軒), 난서(蘭西), 일사(一史), 능운(凌雲), 향사(香史), 은주(銀珠), 춘사(春史), 금사(錦史) 등이 이곳에서 서화를 익혔다.
기성서화회 주최의 휘호회와 전람회를 열어 평양 지역 서화발전에 기여했다. 기성서화미술회가 언제까지 운영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1916년까지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으며, 특히 평양 지역의 많은 여성 회원들이 교육을 받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이후 윤영기는 전국을 유람하는 등 외유의 시간을 가졌고, 일본에도 머물렀던 것으로 보아 1916년 중반경까지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영기가 1927년 평양의 삭성회 제2회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던 것으로 보아 기성서화미술회는 이때까지 운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