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내한 화가의 대표적 인물인 시미즈 토운(淸水東雲, 1869?∼1929?)에게 그림을 배운 문하생들이 결성한 단체로 가토 쇼린[加藤松林]이 중심이 되었다.
여운사는 본래 동일한 이름의 일본 미술 단체가 있었는데 교토에서 활동했던 요코야마 세이키[橫山淸暉]의 사후에 이 지역 화가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1865년에 결성된 단체인 죠운샤[如雲社]이다. 따라서 한국의 여운사는 교토 출신의 화가인 시미즈 토운과 그의 제자들이 결성한 단체이므로 교토의 시조파(四條派) 화풍의 맥을 의식적으로 잇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시미즈 토운은 교토의 모리 간사이[森寬齋], 기시 치구도[岸竹堂]의 영향을 받았고, 한국에 사는 동안에도 야마모토 순쿄[山元春擧], 츠지 가코[都路華香]와 교류했다. 시미즈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이마무라 운레이[今村雲嶺]를 첫 제자로 길러냈으며, 오다테 쵸부시[大館長節], 우메츠 케이운[梅津敬雲]를 비롯해서 1919년 즈음에 가토 쇼린도 문하생이 되었다. 이들이 여운사의 주요 회원이었고, 모두 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시미즈 토운은 1929년경까지 생존해 있었다.
시미즈 토운의 문하생들이 관련된 또 다른 단체로 1924년에 홍원사(虹原社)가 결성되었다. 가토 쇼린, 미토 슌스케[三戶俊亮], 가타야마 탄[堅山坦], 후쿠다 큐야[福田久也] 등이 여기에 참여했다.
여운사의 회원들은 일제강점기에 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일본 화가들로 한국 화단에서 일본 화풍을 주도한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