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화교육기관인 창신서화연구회는 1922년 12월 이길선의 공평동 사택에서 출범했다. 이규채(李圭彩)와 김권수(金權洙) 두 명의 교사와 김정수(金貞洙)ㆍ정기임(鄭己妊)ㆍ이효진(李孝鎭)ㆍ이정환(李貞煥)ㆍ이정만(李正萬) 등 5명의 제자로 시작되었다.
이후 최송설당(崔松雪堂)을 회장으로 평의원에 위관식(魏寬植) 등 4인, 고문에 이완용(李完用)을 추대하여 단체를 이끌었다. 같은 해 4월부터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집했다. 이후 고문에 백당(白堂) 현채(玄采)와 이완용이, 회장에는 김순영(金純迎), 부회장에 방무길(方戊吉)로 바뀌었다. 새로운 임원진과 함께 간사에 김석당(金石堂)ㆍ 김신복 (金信福)ㆍ김희경(金熙卿)ㆍ이순자(李順子)ㆍ김정수(金貞洙)ㆍ정연세(鄭然世)ㆍ이효진(李孝鎭)ㆍ이정환(李貞煥)ㆍ심재덕(沈載德)ㆍ이정만(李正萬)이 선임되었으며, 평의원에는 김영배(金寧培)ㆍ김성만(金成萬)ㆍ오삼주(吳三柱)ㆍ고제원(高悌源)ㆍ김석기(金奭基)ㆍ위관식(魏寬植) 등으로 재조직 되었다.
1923년 3월 17일 규수서화전람회를 갖고 8월에 지방 순회전시를 개최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으나, 1923년 9월 20일 전주 순회전시 이후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서예ㆍ화조 및 사군자를 지도하였으며, 이후 남녀 구분 없이 모집하여 학생들의 전시와 함께 1923년 8월에는 부산ㆍ대구ㆍ경주ㆍ대전ㆍ밀양ㆍ전주 등의 지방 순회전시도 실시했다.
규수서화연구회(창신서화연구회)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서화를 지도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화교육기관으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