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이당(以堂)√김은호(金殷鎬)에게 채색화를 배우고 해방 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와 1936년 김은호의 문하생들이 결성한 후소회(後素會)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실내」로 첫입선을 했는데, 당시 기사에 “만일 사이만 바꾼다면 스승인 이당의 작품이 될 수 있는 정도…”라는 호평을 받았다. 1933년 「어느날 저녁」, 1934년 「봉재」로 연이어 입선하였고, 1936년 제15회에는 「두 여인」으로 특선을 했다. 1939년부터 후소회전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940년 제3회 후소회전에 「흑의」를 출품하였다.
초상화분야에도 뛰어나서 1941년에는 「소태산 대종사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1945년 해방직후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조직되면서 산하단체로 고희동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되었다. 오주환은 이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하였으나 이후로는 중앙화단을 떠나 고향 남원으로 귀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