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추원」·「여(旅)」·「청일」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생애 및 활동
조선미전에는 1939년 「춘교(春郊)」의 출품을 시작으로 1940년 제19회 전시에서 「추원(追遠)」으로 조선총독상을 수상하였는데 1941년에도 「여(旅)」로 또 한 번의 조선총독상을 수상했다. 1942년에는 무감사 출품작가로 참가하여 「춘난(春暖)」으로 세 번째 조선총독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제22회 조선미전에는 무감사로 출품한 「청일(晴日)」이 특선을 수상하면서 이후 추천작가로 추대되었다. 1944년에는 「과염(瓜染)」을 출품했다. 1942년에는 제5회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활발했던 해방 전의 관전에서의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해방 후의 그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1945년 해방직후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의 조선미술건설본부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1947년 배운성(裵雲成)이 설립을 계획했으나 개교하지 못한 조선예술원의 미술과 교수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88년 발표된 납·월북 미술가 해금작가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동아신보』(1938. 10. 14)
- 『매일신보』(1945. 8. 18)
-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