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숙(乞淑)은 15대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재위 298~310)의 아버지로서 석씨 왕족이다. 『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에는 걸어(乞馭)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기림이사금 즉위년조에는 걸숙을 15대 기림이사금의 아버지 또는 11대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 재위 230∼246)의 손자라는 두 가지 설을 전한다.
‘기림이사금의 아버지’라는 설에 따른다면, 걸숙은 조분이사금의 아들인 셈이다. 만일 걸숙이 조분이사금의 손자라는 설에 따른다면 기림이사금과 형제간이 된다. 『삼국유사』 왕력에는 기림니질금(基臨尼叱今)을 제분왕(諸賁王: 조분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삼국사기』에서 조분이사금의 장자인 유례이사금(儒禮尼師今, 재위 284∼297)과 그의 아우 걸숙이 있었다고 하고, 걸숙을 기림이사금의 아버지라고 한 사실과 어긋난다.
기림과 걸숙의 관계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기림이사금 즉위년조의 기사가 유일한 만큼, 걸숙과 기림을 부자간으로 기술한 것을 존중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따라서 걸숙은 조분이사금의 장자인 유례이사금과 신라 제10대 나해왕의 딸 앙혜부인의 동모 형제였다. 그의 관등이 이찬(伊飡)에 이르렀다고 전하지만, 당시에 이찬의 관등이 설치되었다고 여겨지지 않으나 최고위의 귀족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유례이사금이 죽은 이후 그의 아들 기림이사금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한편으로, 『삼국유사』 왕력에서 기림이사금의 어머니를 아이혜부인이라고 한 것은, 기림이사금을 조분왕의 둘째 아들로 여긴 데서 비롯한 것으로서, 착간(錯簡)으로 여겨지지만, 아이혜부인이 조분이사금의 왕비임에는 분명하다.
신라 상고기(上古期)에는 무엇보다도 전왕(前王)의 태자(장자) 또는 적자가 왕위 계승의 우선순위였다. 이전 왕의 손(孫)이 왕위를 승계한 경우는 석씨 왕계의 기림이사금이 유일하고, 형제상속도 점해이사금(詀解尼師今)만이 있었을 뿐이다. 곧 조분-점해의 왕위 승계가 형제 상속이었지만 일시적인 것으로서, 조분이사금의 장자 유례이사금이 다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는 원칙적으로 왕위 계승이 이전 왕의 적장자로 계승되었음을 반영한다.
다시 조분-유례로 이어지는 왕통이 끊기게 되자 걸숙의 아들 기림이사금이 왕위를 승계하였다. 『삼국사기』에서 기림이사금이 조분이사금의 손으로서 왕위를 이은 것이라 하였던 것은, 조분이사금의 왕통을 그의 별자(別子)인 걸숙을 소종(小宗)으로 하는 기림으로 잇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