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소련에서 강제이주를 당할 때, 고려극장 운영에 관여하며 연출가, 희곡작가, 작곡가, 배우 등으로 활동한 {고려인 예술가}.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1932년에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에 고려극장이 설립되자,연해주의 여러 지역에서 배우들을 모집하면서 극장 지도부의 일원으로 연출을 맡았다. 1937년에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될 때 고려극장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공화국으로 옮겼는데,우즈베크공화국의 수도인 타슈켄트로 가서 고려인 극장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1950년에 타슈켄트 고려극장이 카자흐공화국 우슈토베(Ushtobe)의 고려극장에 흡수되자 다시 카자흐공화국으로 옮겼다. 그 뒤 고려극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17편의 희곡을 창작하고 많은 작품을 연출하면서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 공로로카자흐스탄공화국의 표창을 받았고, 1995년에 카자흐스탄의 알마티(Almaty)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밖에도소비에트 대조국전쟁기 용맹 노동 메달도 받았다.
그는 1930년대부터 시와 가사를 썼는데, 대부분 10월혁명, 레닌의 업적, 소련 공산당 건설,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풍요 등을 주제로 삼았다. 특히 연성용이 가사를 쓰고 작곡한 「씨를 활활 뿌려라」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당시 소련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삼은 작품도 발표하였다. 베트남전에 대한 여론이 반영된 이 작품에는 구호 중심의 선동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1993년 저서 『신들메를 졸라매며』를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 『소비에트 시대 고려인 소인예술단의 음악 활동』(김보희, 한울, 2008)
- 『소련 해체 이후 고려인 사회의 변화와 한민족』(임영상·황영삼 외,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5)
- 『신들메를 졸라매며』(연성용, 예루살렘, 1993)
- 「국립조선극장의 연혁: 극장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연성용,『고려일보』1992.8.28.)
- 「연성용 회상기: 극장과 나-카자흐공화국 국립조선극장 창간 60주년을 앞두고」(연성용,『고려일보』1992.2.12.)
- корейцы казахстана в науке технике и культуре(Корейское научно-техническое общество кахак,Алматы, 2002)
- Советский корейскийтеатр(Ким Иосиф, Алма-Ата,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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