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정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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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1912년에,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지방총회에서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발행한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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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2년에,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지방총회에서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발행한 잡지.
개설

러시아 자바이칼스크(Zabaykalsk) 지역의 중심지인 치타시(Chita市)에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시베리아지방총회에서 간행한 월간 잡지이다. 한인에게 러시아정교회(正敎會) 신앙을 확산한다는 목적을 나타냈지만, 일본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재러 한인의 민족 의식 고양, 인재 양성, 독립 운동 전개 등을 제시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1911년에 이강(李剛, 1878∼1964)과 정재관(鄭在寬, 1880∼1930) 등은 치타로 근거지를 옮겨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 소속이었는데, 평안도파로 불리면서 함경도파, 의병파와 갈등을 빚어 근거지를 옮겼다. 특히 이강은 러시아 당국이 대한인국민회를 개신교의 선전 기구로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하고서, 치타에서 원활히 활동하려고 러시아정교회에 귀의하였다.『해조신문(海潮新聞)』을 창간하고『대동공보(大東共報)』의 편집책임을 지냈던 그는 전도자로 자바이칼스크 지역 이민족 선교부의 신임과 지도를 받아 기관지로『대한인정교보』의 간행을 추진하였다.

서지적 사항

한글로 작성된 잡지는 1912년 1월~1914년 6월에 11회에 걸쳐 발행되었지만, 발행 부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배포 지역은 러시아 여러 곳뿐만 아니라, 만주, 일본, 미국 하와이, 멕시코에 이르렀다.

내용

잡지에는 논설, 교회소식, 잡보, 광고, 본국통신, 교회학술 등의 교회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지만, 우리의 주장, 새지식, 바른 소리, 우리 글과 우리 시 등 우리 민족의 주장도 강하게 반영하였다. 곧 1912년 1월 2일에 치타의 아스트라한(Astrakhan)에서 발행된 창간호에는 정교신앙의 확산을 표면적으로 표방하였지만, 재러 한인의 민족의식 고양, 문명 계몽, 인재 양성, 독립운동 전개를 위한 재정마련 등도 제시하였다. 특히 제2호부터는 일본의 학정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의 방해로 정기적인 발간이 어렵게 되었고, 12월에 제7호가 간행된 뒤에는 정간(停刊)되기도 하였다. 1913년 말에 다시 간행하여 1914년 2월부터는 이광수(李光洙, 1892∼1950)를 주필로 삼아 6월까지 제11호를 발행하였다. 다만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러시아와 일본의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러시아 영토 안에서 항일운동은 탄압을 받게 되었는데, 이 때 이강과 정재관 등 기관지 간행에 관여한 7명이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면서 폐간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대한인정교보』는 정치와 관련이 없이 지역 한인 사이의 정교신앙 확산이라는 목적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이종호(李鍾浩, 1885∼1932),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최봉준(崔鳳俊, 1859∼1917), 최재형(崔在亨, 1858∼1920),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장택상(張澤相, 1893∼1969) 등이 자문단으로 참여하였기에, 독립운동의 의지가 강하게 표현되었다. 곧 한인의 실력 양상을 통한 독립 운동의 전개, 계몽과 한민족 문화의 보존, 애국심 배양 등과 같은 당시 재외 한인 언론의 애국운동 논조를 계승하면서도 다른 재러 한인 언론보다 더 진보적인 내용을 담았다.특히 교육 활동과 독립 전쟁의 병행을 강조하면서 큰 나라의 전쟁을 이용한 독립전쟁론을 비판하고 즉전즉결(卽戰卽決)의 논지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권업신문·대한인정교보·청구신보·한인신보』전2권(한림대출판부, 1996)
『러시아지역 한인언론과 민족운동』(박환, 경인문화사, 2008)
「러시아 극동지역의 한인 민족 운동」(박환,『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상, 국사편찬위원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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