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75년에 형성된 러시아의 대표적인 한인 마을.
명칭 유래
형성 및 변천
이 마을은 1875년 음력 8월에러시아로 이주한 안형국(安炯國)과 김구삼(金求三) 등이 한인들을 모은 뒤 당국의 인가를 받아 만들었다. 당시에는지신허(地新墟, Tizinkhe)에서 30여 가구가 이주하여 살았지만,5~6년 뒤에는조선·러시아·중국 세 나라의 국경에 가까운 마을 가운데 상당한 규모로 발전하였다. 당시 마을의 규모는남북으로 10km, 동서로 12km 정도였다.
나선동은 1881년에 러시아와 청나라가 국경을 재조정하면서 청나라의 영토에 속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전략 요충지인 이 마을을 청나라에 넘기지 않고 군인 1천명을 주둔시키면서 요새화하였다. 나선동은 270여 가구 2,600여 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는데, 러시아는 마을의 한인들에게 러시아 영토의 다른 곳으로 이주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한인들이 청나라로 귀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마을을 없애고 주민을 몰아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인들은 집안의 살림살이도 챙기지 못한 채 마을을 떠나 흩어졌다. 이 때 일부는 조선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러시아 내륙 지방으로 옮겼다. 1884년에 내륙 지방으로 옮긴 한인들은 현재의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세니예프(Arsen’ev) 지역 아누치노(Anuchno)에서 도비허[都兵河, Daubikhe]라는 새로운 마을을 개척하였다. 그 뒤 1886년에 나선동은 훈춘 조약에 따라 청나라에 정식으로 반환되었다.
참고문헌
- 「나선동도」(김광훈·신선욱,『아국려지도(俄國輿地圖)』,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7)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하―재외동포사 총서8―(국사쳔찬위원회 편, 국사편찬위원회, 2008)
- 「러시아의 한인 발자취를 찾아서」3(반병률,『신동아』8월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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