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포자르스코예’라고 불리는 미즈호[瑞穗]는 일본이 러시아 남사할린 지역에서 실시한 식민 정책으로 형성된 전형적 농촌 마을이다. 1945년 8월 무렵, 이 마을에는 약 250호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10여 명의 조선인도 일본인의 차별과 감시 속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일본인들은 1945년 8월에 소련이 참전하여 패색이 짙어지자, 조선인들이 소련군에 협조한다는 소문을 공유하였다.
1945년 8월 20일에 지금의 홈스크인 남사할린 마오카[眞岡]에 소련군이 상륙하였다. 이곳은 일본인 주민들이 피난을 위해 배를 탈 항구였다. 미즈호 마을은 8월 21일부터 일본인 주민이 피난하면서 텅빈 마을로 바뀌었다. 다만 재향군인회 관계자의 지시를 받은 재향군인회 회원과 청년단 남성만이 마을에 남아 있었다. 이들은 일본이 ‘소련군에 협조한 조선인의 스파이 활동으로 패전하였다’는 소문을 믿고서, 함께 생활하였던 마을의 조선인들 뿐만 아니라 임시 노동 등을 목적으로 마을 주변에 머물렀던 조선인 모두를 학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8월 20일 아침부터 25일까지 조선인 약 35명을 조직적으로 살해하고는 여러 곳에 나누어 몰래 매장하였는데, 이때 여성 3명과 젖먹이를 포함한 6명의 어린이도 학살되었다. 그 뒤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왔고, 살해 가담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였다. 하지만 1946년 여름 이후에 소련 군당국이 조사를 시작하여 사건의 전모와 살해 가담자들을 모두 밝혀냈다. 살해에 적극 가담한 18명 중에 7명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11명에게는 10년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인이 조선인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를 공식 기록으로 확인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사할린 조선인의 비극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병든 식민 지배 의식, 국가에 대한 맹목적이고 집단적인 충성심과 섞여 일어난 비인도적 잔혹 행위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