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산당이 사할린(Sakhalin) 한인을 교화하기 위해서 발간한 한글 신문이다. 그 뒤 이름과 소관 기구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현재까지 사할린 한인들이 한글을 포함하여 민족 문화를 이해하는 통로로 삼고 있다.
1945년 8월에 소련은 일본의 패전에 맞추어 남사할린을 관할하였고,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한인들은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소련은 사할린 한인에 대한 ‘사상 및 문화적 교화’를 목적으로 한글 신문의 발간을 결정하였는데, 1949년 6월 1일에 하바롭스크주(Khabarovsk州) 공산당위원회는 기관지로『조선노동자』를 간행하였다. 이 신문은 하바롭스크주와 사할린주, 연해주 일대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매주 3차례 발행되었으며, 최초의 발행 부수는 7천부였다.
그 뒤 1950년 9월에 사할린주 공산당위원회가 관할하면서, 신문사는 유즈노사할린스크(Yuzhno-Sakhalinsk)로 이전하였다. 당시에는 북한에서 들어온 2만명 이상의 노무계약자들을 고려하여 발행 부수를 1만2천부로 늘리기도 하였다. 1961년 5월 14일에『레닌의 길로』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1990년 1월 30일에는 발간 1만호를 돌파하였으며, 1991년 1월 1일부터『새고려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초기에는 사상, 공업, 문화, 독자란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문예와 함께 독자가 참여하는 통신란도 있었다. 현재는 한국어와 러시아어 두 언어로 매주 1회 4면으로 발간되고 있으며, 지역 뉴스, 한국의 문화와 역사, 기고 등을 주로 싣고 있다.
이 신문은 무엇보다도 한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상 전파의 수단이었다. 따라서 1면과 2면에는 반드시 소련 및 지방 공산당의 결정 사항, 주요 정책에 대한 홍보 등이 실렸다. 그러나 사할린주 공산당위원회의 기관지로 변화한 뒤에는 사할린에서 한국어를 보존하는데 상당히 기여하였다. 곧 1960년대에 사할린의 한인 학교들이 폐교되었지만, 그나마 사할린 한인들은 이 신문을 통해서 각 지역의 한인 소식이나 문예 작품들을 한글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사할린 한인이 주로 모여사는 지역에 기자를 파견하여 지역 소식을 활발히 전하였고, 나아가 사할린 지역뿐만 아니라 극동 지역이나 모스크바 지역,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독자를 확보하면서 한인 관련 기사를 실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에는 한국 소식을 본격적으로 전하였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이산가족찾기, 한국어 강좌 등 한국문화를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다만 1992년 1월 1일부터 사할린주 공산당위원회 기관지로서의 역할이 중지되면서, 재정적 어려움과 함께 독자층이 감소하는 시련을 맞았다. 이에 따라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현재는 한글과 러시아어를 병용하여 간행하고 있고, 인터넷판도 운영하고 있다.
이 신문은 해외 한인 언론 매체로는 드물게 66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발행되었다. 일제의 지배와 소련의 소비에트 체제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지닌 사할린 한인 사회에서 민족문화를 보존하는 주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