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소련 연해주 공산당 당위원회의 기관지로 1923년에 창간한 신문.
개설
강제이주가 발생한 1937년 당시 선봉신문은 제6대 편집장인 최호림이 이끌고 있었는데, 최호림을 비롯한 선봉의 모든 직원들은 강제이주 직전 소련내무부 인민위원회에 의해 연행되었다. 이 가운데 농업부장이었던 황동훈만이 살아남아 강제이주로 정착한 크즐오르다에서 『선봉』을 이어받는 『레닌기치』로 중앙아시아에서 명맥을 이어나갔다.
편찬/발간 경위
발행부수가 3-4천부에 달했고, 이 신문의 책임주필은 『3월1일』신문 주필이었던 이백초였으며, 이외에 이성, 오성묵, 이괄, 김진, 최호림, 박동희, 남창원, 황동훈 등이 활약했고, 『권업신문』과 『한인신보』의 주필을 지낸 김하구가 총무, 김철, 계봉우 등이 번역원으로 활약했다.
『선봉신문』은 당시의 시점에서 혁신적인 신문이었다. 신문형태도 1920년대 당시 서울에서 발행되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본식 인쇄방식에 의해 발행되고 있었는데, 선봉신문도 초기에는 한국과 일본 신문처럼 기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갔지만, 이후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1929년 4월 발행기관이 ‘러시아공산당 원동변강위원회와 직업동맹 원동변강쏘베트’로 바뀌면서 하바로프스크로 이전됐다. 이후 1933년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와서 발간을 계속되던 『선봉』은 1937년 9월 12일자 제1644호로 중단된 후 크즐오르다로 이전됐다. 당시 신문 발행진은 제6대 편집장인 최호림이 이끌고 있었는데, 최호림을 비롯한 선봉의 모든 직원들은 강제이주 직전 소련내무부 인민위원회에 의해 연행되었다. 이 가운데 농업부장이었던 황동훈만이 살아남아 강제이주로 정착한 크즐오르다에서 『선봉』을 이어받는 『레닌기치』로 중앙아시아에서 명맥을 이어나갔다.
서지적 사항
내용
지면은 대개 1면에 사설, 조선국내의 소식중 주로 사회주의운동기사, 주요 세계 혁명소식이 차지했고, 2면에서는 상단에 세계 각지소식, 하단에 극동지역 단신과 문화면이 자리잡고 있었다. 3면에는 소련공산당 당사업보고, 강령, 지시, 각 기념식 연설문, 당의 결정서 등이 게재되었다. 4면에는 정치, 경제학강의, 신경제안 해설, 노동법 해설 등이 실려 있었다. 문화면의 문예페이지는 1925년 무렵 개설되었는데, 초기에는 투고자가 적어서 존폐를 거듭하다가, 1928년을 전후하여 연해주로 망명한 포석 조명희에 의해 ‘독자문예’ 등의 이름으로 문학작품 발표가 활성화되었다.
1928년 9월 8일자에는 당시 소련 작가 고리키가 고려인 작가들에 보낸 편지도 게재된바 있다. 이 문예란은 오랜기간 고려인 한글문학의 발표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소련지역의 한글문학』(이명재, 국학자료원, 2002)
- Связанные одной судьбой(고려일보사, 세늠출판사(ЖИЦ Сенi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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