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69년 4월에 러시아 수이푼강 주변에 조성된 한인 마을.
개설
명칭 유래
자연환경
형성 및 변천
마을 주민은 정착한 뒤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조, 감자, 옥수수 등의 종자를 받아 재배하였다. 자연히 주민은 1년 만에 70가구로 늘어났고, 이어서 가축과 함께 추가 지원을 받으면서 3~4년이 지난 뒤에는 16~17km의 크기로 마을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생활이 점차 안정되자, 1870년대 말까지 이주자들도 계속 증가하였다. 주민들은 주변 지역을 개척하였는데, 강변 양쪽에는강의 상류인 서쪽의 상소(上所)부터 동쪽으로 중소(中所), 관소(官所), 하소(下所) 등 4개의 촌락군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마적(馬賊) 무리들이 갑자기 마을을 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1870년대 말에는 한인들의 청원에 의해서 마을 안에 러시아군 초소가 설치되었다. 치안이 좋아지자, 1880년대 중반에는 274호 2,827명이 사는 큰 마을로 확장되어, 연해주의 한인 마을 가운데 규모로는 1위의 마을이 되었다. 1870년대에 러시아정교회(正敎會)와 함께 선교구가 배치된 이래, 1883년에는 2학급의 교회교구 학교가 들어섰는데, 교사를 겸한 사제가 3개 반 35명으로 구성된 한인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 뒤 언제 마을 이름이 푸칠로브카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92년에 코르사코프카(Korsakovka)를 읍의 치소로 삼은 러시아 지방행정체계에 복속되었다.
현황
1937년에 한인들이 강제 이주된 뒤, 마을은 전형적인 러시아인 마을로 변하였다. 지금의 마을에는 우물, 묘지 등의 한인 거주 흔적과 함께 1928년 7월에 소련으로 망명한 조명희(趙明熙, 1894~1938)가 교사로 활동하였던 학교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 『러시아-중앙아시아 이주한인의 역사』(이상근, 국학자료원, 2010)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자료집)』 (국사편찬위원회 편, 2009)
- 「러시아의 한인 발자취를 찾아서」5(반병률,『신동아』10월호, 2004)
- 『고려신문(КОРЁ СИНМУН)』(200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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