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거주 교포작가 김세일이 1959년 여름부터 1965년까지 7년여 동안 역사적 자료와 방증기록을 토대로 완성시킨 대하역사소설이다.
소설의 구성 및 형식은 다음과 같다. 1943년 10월 25일 홍범도는 75세의 나이로 크즐오르다에 있는 자기집에서 아내와 손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그는 항일전의 맹장, 독립전쟁의 영웅이면서도 군림하지 않았다.
그의 유해는 마을 인근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서거 8년이 지난 1951년 『레닌기치』신문사와 고인의 동지들, 유지들이 모여 분묘수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금을 모아 퇴락한 묘소를 정비하고 새로 묘비를 세웠다. 이와 더불어 홍범도와 의병전쟁으로부터 빨찌산 투쟁을 함께 하였던 이인섭이 홍범도의 자료를 수집하여 「조선인민의 전설적 영웅 홍범도를 추억하면서」라는 기록물을 남겼다. 이인섭이 홍범도에 관한 기록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가 1951년 홍범도의 분묘수리위원회에 참여하면서였다. 이인섭은 당시 홍범도의 전우들의 위탁에 의하여 1951년부터 홍범도에 대한 회상기 등의 자료들을 수집하였고, 당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있던 고려극장(조선극장)의 배우이자 서기였던 김진으로부터 홍범도의 일기와 사진을 받았고, 하바로프스크의 장리호가 보내준 홍범도의 장년시대 사진과 담화 내용을 종합하여 「홍범도 장군」을 집필했다.
홍범도가 직접 쓴 「홍범도 일기」와 이인섭의 기록 등을 바탕으로 모스크바 거주 고려인 작가 김세일(김 세르게이 표도르비치)이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레닌기치』에 ‘소설 홍범도’의 제목으로 연재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980년대에 이미 중앙아시아 고려인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던 고송무가 1989년 8월 서울을 방문할 때에 이 소설 원고를 가져와「역사기록소설 홍범도」라는 제목으로 그해 11월에 제3문학사에서 13권, 1년 후인 1990년 11월 45권이 각각 출판되었다.
김세일이 굳이 ‘역사기록소설’이라고 표기한 것은, 홍범도에 대한 픽션(소설)의 의미보다는 작가 스스로의 겸양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소설’로 표기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역사기록소설 홍범도」는 픽션이 전혀 가미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사실에 근거한 기록임을 살피게 한다.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에 있다.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특수성은 문학사적 측면에서 주목을 요하고 있다. 고려인문학은 공간과 사회적 배경을 구체화하고, 작품을 주체화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김세일은 고려인 대표작가로서 시와 소설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진행하였다. 고려인 이주의 역사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가운데 창작된 그의 작품은 고려인문학 발전에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김세일의 「홍범도」는 실증적 서술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홍범도외 허구의 인물을 드러내지만, 현실에 대한 투철한 상황인식이 작품에 내포되어 있다. 항일무장투쟁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이 보인다.
「홍범도」에서 묘사되고 있는 인물 홍범도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힘으로 세상을 연다는 인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자기 극복을 한 신념의 인간 등장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자신을 스스로 희생할 민중의 영웅적 인물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범도」는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윤리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대두되기도 한다. 전투에서 나타나는 생명 경시는 이러한 부분을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항일무장투쟁은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지만 삶에 대한 경시 문제는 윤리적 갈등을 내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홍범도」는 윤리적 갈등 안에서 현실도피가 아닌 새로운 민중의 가치관 을 형성하고 있다. 갈등의 소재는 존재에 대해 암담함과 소외 제시하고 현재 삶이 한계 상황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이질적인 생명과 상황에 대한 비애를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홍범도」는 격정적으로 현실을 살아온 홍범도를 통해 작품안에 불안한 내면의식을 지속적으로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안에 윤리적 갈등이 제기되는 것은 허무주의의 발현이자, 긍정적인 사회적 인간의 부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세일은 홍범도라는 인물을 통해 기형적인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본질을 깊숙이 인식한다. 그러나 영웅주의를 바탕으로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민중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작품이 지니는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세일은 일본의 탄압에 투쟁하여 승리하는 민족의 역사를, 소련의 탄압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거주하게 된 삶과 능동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는 민족정체성의 문제를 작품 속에서 나타내는 것으로 고려인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로 볼 수 있다.
원본 작품은 현재 『레닌기치』신문에 남아 있으며, 「홍범도」는 한국과 소련과의 교류가 본격화된 1980년대 말 한국독자들에 소개되었는데, 1989년 신학문사에서 전3권으로, 1990년 제3문학사에서 5권으로 한국에서 발간되었다. 신학문사에서 발간된 것은『레닌기치』에 연재된 것을 그대로 발행한 반면, 제3문학사에서 발간된 것은 김세일이 한국독자들을 위해『레닌기치』에 연재된 내용을 보완하고 작품의 후반부를 새로 추가해서 발행되었다.
김세일의 「홍범도」는 고려인 전체의 역사와 현재적 삶의 과정이 응축되어 있으며, 고려인들의 뿌리찾기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고려인 한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역사속 인물인 홍범도와 그가 행했던 투쟁들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소설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이인섭이라는 실존인물의 진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록문학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