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한인들이 2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1909년 5월에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메리다지방회(Mérida地方會)가 창립되었다. 그 뒤 1910년 11월에 지방회 회장인 이근영(李根永)은 수십 명의 한인 청년을 모아 사관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숭무학교(崇武學校)를 세웠다. 숭무학교는 처음에는 작둔 지역에 자리하였으나, 이후 메리다 시내로 옮겨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교장은 이근영이 맡았고, 이종오가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멕시코 한인의 후원을 받았다. 숭무학교에서는 노동 여가에 무예를 연습시켰는데,사관학교이지만 군법뿐만 아니라 일반 교과도 가르쳤다. 그 뒤 6월부터는 신광희가 메리다지방회관에서 십여 명의 남녀 학생을 모아 한국의 역사지리와 기타 과정을 가르쳤다. 멕시코 한인들은 매주 1원씩 동맹 저금을 모아 학생들을 장차 원동으로 보내기 위해서 국사와 국어 등도 가르쳤다.
한편 메리다지방회는 각 지역에 경찰소를 세웠는데, 경찰소에도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곧 사낙타(Sanakta)경찰소는 110명의 한인을 대상으로 학교를 설립하였는데, 방경일이 교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1916년 11월 6일에는 잇신캅(Itzincab) 농장에 진성국어학교(進成國語學校)가 설립되었는데,처음에는 서병두가 교장을 맡았다가 1917년에는 변윤행이 담당하였다. 1918년 4월에도 피시야(Pixyah) 지역에 국어학교가 새로 세워져 이대용이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5월 13일에는 오스타파캅(Oxtapacab) 지역에 의성국어학교가 신설되어 모집한 생도 13명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8월 20일에는 레판(Lepan) 지역에 반도학교가 설립되어, 생도 23명이 역사·지리·산술·국어 등을 배웠다.
1915년 말에 멕시코의 임시대통령 카란사(Venustiano Carranza)는 멕시코에 살고 있는 15세 이하 내외국인은 노동 대신에 순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메리다지방회는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를 가르치는 국어학교를 설립하고자 멕시코 교육부와 협의하여, 멕시코의 역사와 스페인어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그 뒤 메리다 지역에도 국어학교가 설치되었는데, 교장은 메리다지방회 회장인 김기창이 맡았다. 1917년 1월 8일에는 메리다지방회가 관할하는 해동학교(海東學校)가 설립되어,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당시 해동학교의 감독은 방경일, 교장은 김기창, 교사는 이종오, 간사는 김성민이 담당하였으며, 20명의 생도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도 마련하였다. 해동학교의 운영은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1919년 7월 8일에 실시한 방학시험에서 많은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하였다. 다만 1920년 이후에 메리다 지역의 한인들이 멕시코의 여러 곳으로 흩어지면서 사실상 폐교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학교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한인 단체인 메리다지방회에서 설립한 교육기관이었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