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국어학교 ()

단체
멕시코 와하케뇨 지방에 설립된 한인 소학교.
정의
멕시코 와하케뇨 지방에 설립된 한인 소학교.
개설

1909년에 멕시코 유카탄의 에네켄((henequén) 농장을 떠난 한인들이 1911년 12월에 와하케뇨(Oaxaqueños) 지방으로 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조직하고서 2세 교육을 위하여 설립하였다.

연원 및 변천

한인들은 1905년에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온 뒤, 1909년까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다가 해방되어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경제적 어려움을 계속 겪었던 한인 가운데 약 3백여 명은 1911년 12월에 베라크루스(Veracuruz)주(州)의남쪽 끝에 자리한 와하케뇨 지방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와하케뇨를 ‘오학기나’라고 부르고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오학기나지방회를 조직하였다.

오학기나지방회는 1912년 5월에 70∼80명 정도의 아동을 위해서 소학교 설립을 결정하였다. 그 뒤 학부모와 유지들의 협력을 받아 일신국어학교를 설립하였는데, 감독에는 서현우, 교장에는 김윤원, 교사로는 신광희를 임명하였다. 일신국어학교는 조국을 잊지 않는 정신을 가르치는데 힘썼으며, 특히 국문, 한문, 산술(算術), 창가(唱歌), 체조 등의 교과 과정을 운영하였다. 하지만 1913년에 이르러 운영 경비가 부족하여 곤란을 겪기도 하였다.

한편 오학기나지방회는 1913년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야학교를 설립하였다. 청년 20여 명에게 한문과 산술은 물론 헐버트(H. B. Hulbert)가 지은 세계지리서인『사민필지(士民必知)』등과 함께 스페인어인 묵어를 가르쳤다. 고희민(高羲民)이 교사를 맡았고, 교장은 감문형이었으며, 경비는 박용규가 담당하였다.

일신국어학교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회원들이 세웠지만, 운영은 지방회와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1914년 10월부터 오학기나지방회는 일신국어학교를 속하게 하고는 교사 최창선에게 월급 35원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1913년 5월 26일에는 일신국어학교 설립 제1주년 기념식을 맞이하여 와하케뇨 지방의 한인들이 군대를 조직하고는 나팔인 곡호(曲號)을 불면서 예를 갖춘 뒤에 기예(技藝)를 연습하였다. 1914년 8월 29일에는 국치(國恥)기념 행사를 열고서 십자모양으로 만든 상표(喪票)를 가슴에 붙이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신국어학교는 이민 온 멕시코 한인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갖추려고 설립한 학교로, 대표적인 해외 한인 민족 교육 기관으로 꼽힌다.

참고문헌

『중남미 한인의 역사』(김도형, 국사편찬위원회, 2007)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Ⅲ―멕시코·쿠바―(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편, 국가보훈처, 2003)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제물포에서 유카탄까지―』(이자경, 지식산업사, 1998)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Reedley California, 1959)
「멕시코지역 대한인국민회의 조직과 활동」(김도형,『국사관논총』107, 국사편찬위원회, 2005)
「멕시코 한인사회와 독립운동」(김도형,『아시아 아메리카 연구』5-1, 2005)
집필자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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