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원 ()

단체
쿠바 한인회가 1932년에 조직한 한인 청년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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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쿠바 한인회가 1932년에 조직한 한인 청년 단체.
연원 및 변천

쿠바 한인 사회의 1세대 이민자들은 한인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잇고 조국의 광복을 실현하는데 중심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면서 젊은 세대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졌다. 자연히 쿠바 한인회는 민성국어학교(民聲國語學校)를 세워 청소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여러 교육 과정을 실시하였다.

1932년 3월 10일에 민성국어학교 교장 임천택(林千澤)이 마탄사스(Matanzas)에서 청년 조직인 청년학원을 설립하였다. 이 학원은 야학(夜學) 성격을 갖춘 학교였는데, 주로 한국역사를 가르치면서 애국심의 고취를 지향하였다. 4월 3일에 마탄사스 지방회 통상 지출금에 기록된 ‘청년학원의 권학비 1원’은 이 학원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학원은 1934년에 없어지기까지 약 2년 동안 유지되었다. 1936년에 마탄사스에는 미주국민회(美洲國民會) 총회의 요청에 따라 청년부가 설립되었다. 그 뒤 아바나(Havana)에도 청년부가 조직되었으며, 1941년에는 카르데나스(Cárdenas)에도 청년조직이 세워졌다. 하지만 청년부는 국민회에 속한 단체였기 때문에, 1950년대에 국민회가 사라지면서 청년부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끝나고 말았다.

아바나 지방회가 해체된 상태에서 마탄사스 지방회도 활동이 부진하자, 마탄사스에 거주하였던 한인 청년들은 1952년 말에 한인청년회를 조직하였다. 이 때부터 기존의 지방회를 대체하는 단체로, 1953년 초기에는 카르데나스에서 한인청년구락부가 설립되었고, 아바나에서도 한인청년단이 결성되었다. 당시 마탄사스 한인청년회는 회장 임철규가 회원 40여 명과 함께 활동하였고, 카르데나스 한인청년구락부는 회장 박근성이 35명의 회원을 이끌고 있었으며, 아바나 한인청년단도 단장 주근엽과 단원 30명이 운영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들 조직은 활동 범위가 점차 줄어들었다가 1959년에 쿠바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1930년대 쿠바 한인 사회는 차세대 청년들이 민족정신을 계승하기를 바랐는데, 1932년에 작성된 청년학원의 창립선언문에는 조국의 재건, 애국정신의 계승, 인격의 도야(陶冶) 등이 잘 반영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이후 결성된 마탄사스 한인청년회, 카르데나스 한인청년구락부, 아바나 한인청년단 등에도 계승되었다. 1953년 이후에 이들 단체는 국민회를 대신하여 당시 한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념일인 3·1절 행사를 주최하면서 실질적으로 한인회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쿠바 한인 이민사」(안금영,『멕시코 쿠바 한인 이민사』,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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