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아트사코알코스 한인회 (Coatzacoalcos )

사회구조
단체
멕시코 한인이 코아트사코알코스에 설립한 한인회.
이칭
이칭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푸에르토예비지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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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멕시코 한인이 코아트사코알코스에 설립한 한인회.
개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간 한인들이 대서양의 관문인 멕시코 남부 베라크루즈(Veracruz)주(州)의 코아트사코알코스(Coatzacoalcos)에서 설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 소속된 멕시코의 3대 지방회 가운데 하나인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의 토대를 이루었다.

연원 및 변천

코아트사코알코스 항구는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멕시코의 주요 항구이다. 이곳은 1,000여 명의 한인들이 멕시코로 이민하여 들어올 때 최초로 도착한 곳이기도 하다.

1915년 7월에 수십 명의 한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어업에 종사하면서 한인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때 인근의 와하케뇨(Oaxaquenō)에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가 설립되어 활동하였는데, 이 지방회에서 파견된 이근영(李根永)이 한인 동포들의 규율을 잡는 자치단체를 세우고 대한인국민회 소속 경찰소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1918년에 경찰소를 새로 짓고서는 푸에르토(Puerto)예비지방회라고 불렸다. 한편 1917년 6월에 오학기나지방회가 해체된 뒤, 많은 한인들이 코아트사코알코스로 이주하여 코아트사코알코스한인회를 구성하였다.

1930년대에 코아트사코알코스에 거주하였던 한인은 남자 15명, 여자 13명, 아동 25명 등 총 53명이었다. 1936년 경에는 최정식이 교장을 맡은 국어 야학이 다시 열렸고, 이듬해에는 청년회가 조직되어 정태순이 회장을 맡고서, 서기는 김보배, 총무는 김놀라, 감찰은 김요한 등이 선임되었다. 1939년에 ‘부엘도예비지방회’라고도 불린 푸에르토예비지방회가 ‘과살괄고지방회’라고 부르는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두 가지 이름은 제법 오랫동안 함께 쓰였다.

1926년에 안인식이 코아트사코알코스한인회의 회장을 맡은 이래, 1927년에는 윤화용, 1930년에는 조여삼, 1936년에는 김봉국, 1938년에는 김용수, 1939년에는 공인덕, 1940년에는 편영대, 1941년에는 공인덕 등이 차례로 한인회를 총괄하였다. 특히 규모가 점차 커져서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는 메리다지방회(Mérida地方會), 묵경지방회(墨京地方會)와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43년에 코아트사코알코스에 거주하는 한인이 88명으로 줄고, 1950년대에 들어서 한인 1세대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한인회의 운영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1954년 10월에 이근영이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의 깃발과 인장을 메리다지방회에 반납하면서 코아트사코알코스한인회 역시 폐쇄되었다.

기능과 역할

이 한인회는 한인 후손의 한글교육을 위해서 1917년 12월에 청산소학교를 설립하였고, 1918년 3월에는 형산국어학교를 세웠다. 특히 1937년부터는 60세 이상의 한인 1세대 노인들을 돕기 위해서 20세 이상의 한인들 가운데 남자는 매달 30전, 여자는 20전을 성금으로 내기도 하였다. 1938년에는 안창호(安昌浩)의 유족에게 조위금을 전달하였으며, 그 뒤에도 대한인국민회의 부담금과 광복 후원금 등을 꾸준히 보태기도 하였다. 1943년에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한 진주만 사건이 터지자, 다른 한인회와 마찬가지로 더욱 한데 뭉쳐 조국의 광복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의의와 평가

1905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한인 이민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한인회로, 조국의 광복을 바라면서 해외에 정착하였던 한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한인단체이다.

참고문헌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이자경, 멕시코 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 2006)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이자경, 지식산업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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