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학기나 지방회 (Oaxaqueños )

정치
단체
멕시코의 오학기나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이칭
이칭
와하케뇨지방회, 오아하카지방회
목차
정의
멕시코의 오학기나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개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갔던 한인들은 1909년 4월까지 에네켄(henequén) 농장에서 대부분일하였다가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그 가운데 베라크루스주(Veracuruz州) 남쪽 끝에 자리한 와하케뇨(Oaxaqueno) 지역으로 이주한 약 3백 여명의 한인들이 1911년 12월 17일에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오학기나지방회를 조직하였다.

연원 및 변천

1909년에 에네켄 농장에서 나온 한인들은 유카탄(Yucatán)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기 힘들었다. 당시 베라크루스주 와하케뇨 지역의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한인국민회 본부에 유카탄 지역의 한인들을 초빙하는 전보를 보냈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Mérida)지방회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한인들에게 전보 내용을 전하였고, 1911년 12월 11일에 한인들은 와하케뇨 지역으로 이주하여 그곳을 ‘오학기나’로 부르며 정착하였다.

오학기나 지역의 한인들은 주로 사탕수수 농장이나 미국인이 경영하는 산 후안 수하르(San Juan Zugar) 제당공장 등지에서 일하였는데, 당시 일당은 멕시코 돈 2원이었다. 그 뒤 12월 17일에 한인들은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새로 설립하였다. 회장은 서현우가 맡았고, 부회장에 이종대, 총무에 이원석, 서기에 이기종, 법무에 최정식, 학무에 방경일, 외교에 황면주, 구제에 노형달, 사찰에 임상준, 평의원에 이근영(李根永)·이국빈·차용환·방영화·하오성, 대의원에 서병두·유진태 등이 선임되었다. 특히 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한인들을 위해서 1913년 6월에는 노동소를 설치하였고, 1914년에는 지방회를 유지하려고 ‘재정출납에 대한 세칙’ 11개조를 만들어 실행하기도 하였다.

1910년에 시작된 멕시코 혁명은 1914년에 본격화되어, 멕시코 전역이 심각한 사회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한인에게 도움을 주었던 미국인이 멕시코에서 쫓겨났기에, 한인들은 외부에 돈을 부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다. 더욱이 외국인에 대한 협박과 위협이 가해지면서 재산은 물론 생명도 지키기 어려웠다. 자연히 반 이상의 한인들은 오학기나를 떠나 메리다로 돌아갔고, 남아 있던 한인들도 대부분 교통이 편리한 코아트사코알코스(Coatzacoalcos) 지역으로 옮겨 갔다. 이 때 오학기나지방회에서는 곤경에 빠진 한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서현우와 이응상을 위문위원으로 삼아 각 지역에 파견하는 한편, 코아트사코알코스에서 어업을 시작한 한인들을 보호하려고 1915년 10월에 경찰소를 설치하였으며, 경찰원에는 감문영, 서기에는 서병학, 사찰에는 정자용 등을 임명하였다. 그 뒤 1916년 7월에 오학기나지방회는 소재지를 코아트사코알코스 항구로 완전히 옮겼는데, 당시 회장은 고희민이 맡았고, 부회장에 김대선, 총무에 윤화용, 서기에 정자용, 재무에 서원식, 학무원와 구제원에 김덕수, 법무원에 노덕현, 대의원에 황인화, 실업부원에 이선일, 사찰에 김창현 등이 선임되었다. 10월부터는 국어 야학교도 세워 운영하였다. 1917년 3월 13일에 회장 고희민이오학기나지방회를 다시 설립하였지만, 6월 1일에 멕시코 혁명군이 한인의 재산을 노략질하고 불을 놓는 탓에 모두 코아트사코알코스로 도망하여, 오학기나지방회는 완전히 해산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중남미 한인의 역사』(김도형, 국사편찬위원회, 2007)
『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Ⅲ―멕시코·쿠바편(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편, 국가보훈처, 2003)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이자경, 지식산업사, 1998)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Reedley California, 1959)
「멕시코지역 대한인국민회의 조직과 활동」(김도형,『국사관논총』107, 국사편찬위원회, 2005)
「멕시코 한인사회와 독립운동」(김도형,『아시아 아메리카 연구』5-1, 2005)
집필자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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