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립교향악단은 북한 사회에서 체제를 과시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결성 초기에는 중앙교향악단으로 시작했고 현재 평양 국립교향악단으로 불린다.
1946년 중앙교향악단으로 시작해서 1947년 국립교향악단으로 개편되어 국립예술극장의 산하 단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독립적인 관현악곡은 물론이고 연극 및 악극의 반주를 맡았다. 6.25전쟁 이후 작곡가동맹의 산하단체로 재편성되었다가, 1956년에 독립단체가 되었다. 1969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소속 관현악단을 통합시켜 대규모 관현악단으로 성장했고, 1971년 피바다 가극단 소속의 관현악단이 되었다가 1980년에 다시 독립된 국립교향악단이 되었다. 김기덕, 허재복, 김병화, 장룡식 등이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다. 이 중 김병화는 2000년 서울 공연 당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재일교포 지휘자로 김홍재, 재미교포 지휘자로 곽승, 한국의 지휘자로 박범훈과 정명훈, 미국의 지휘자로 로린 마젤이 객원으로 지휘봉을 잡은 바 있다.
중앙교향악단시절 이후부터 조선민요 「방아타령」, 「양산도」 외 유럽의 관현악작품을 연주했다. 국립교향악단 시절부터는 「청선벌에 풍년왔네」와 같은 배합관현악으로 편성된 창작곡을 연주했다. 배합관현악은 서양악기와 개량 전통악기인 저대, 장새납, 단소 등을 함께 편성한 관현악법을 말한다. 관현악용 「피바다」, 민족가극 「춘형전」 등이 배합관현악으로 연주되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한편,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가 조선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윤이상의 「클라리넷협주곡」 및 「교향곡」1번 등이 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되었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정교하고 박력 있는 연주로 북한의 문화 선전용 공연은 물론이고 외교활동을 벌였다. 설립 이후부터 민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창작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배합관현악의 실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배합관현악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교하게 연주함으로써 창작 관현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