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8~1947년까지 서울에서 활동한 기생조합.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기능과 역할
한성권번은 기생조합으로 설립될 당시부터 극장에서 활발한 공연활동을 벌였다. 흥행용 기획공연으로부터 자선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조직 결성 초기에는 궁중 여악의 전형적인 공연종목이었던 정재를 공연함으로써 당시 사회에 여성의 우아미와 세련미를 각인시킨 바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로는 전통 가요 및 당시 유행가 나아가 서양 댄스 등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1930년대 중반 이후로는 조선권번에 비해 조선가무로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지만, 결성 이후 1947년까지 단 한 번도 해체되거나 와해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연활동을 전개했던 유일한 기생조직이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근대음악사회사』(권도희, 민속원, 2012)
- 「기생의 가창활동을 통한 근대에의 대응」 (권도희,『한국시가연구』32집, 2012)
- 「20세기 기생의 가무와 조직」(권도희, 『한국음악연구』45집, 2009)
- 「20세기 관기와 삼패」(권도희, 『여성문학연구』16집, 2006)
- 「경성의 화류계」 (일기자,『개벽』1924. 6)
- 「조선가무를이어가는 사람들-기생금석담」(목금흑, 『여성』1939. 6)
- 「명기영화사: 한성권번」 (청의동자,『삼천리』193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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