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영 ()

국악
인물
해방 이후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가야금산조명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2년 11월 29일
사망 연도
1997년 3월 4일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평계동 22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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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가야금산조명인.
개설

가야금의 명인으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보유자로 활동하다가 작고했다.

생애

정달영의 본명은 재국(在國)이다. 1922년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작고했다. 부친 정학기는 가야금 제작의 명인이었고, 피리시나위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7세부터 능주에서 맹인 가야금 연주가 김복수에게 풍류를 배우면서 가야금에 입문했고, 9세에는 숙부 정남옥을 능주집에 모셔와 풍류와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 정남옥은 한숙구에게 가야금을, 박종기와 한주환에게 대금을 배웠고, 고모부 조때갈, 고종사촌 형 박점옥에게 장단과 판소리를 배웠다. 광주농업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했다. 상경 후 정달영은 가야금 병창의 명인 오태석에게 사사했다. 정달영의 제자로 강정열과 서공철이 있다. 이 중 서공철은 정달영의 외조카다.

활동사항

정달영은 13세에 상경하면서부터 동일창극단, 대동창극단에서 활동했고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 국극사, 임춘앵 단체, 우리국악단, 조선창극단 등에 소속하면서 단체 활동을 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작고할 때까지 활발하게 독주 활동을 했다.

상훈과 추모

1985년에 경주 신라예술제 가야금 병창부 장원이 되었다. 1987년에 KBS 국악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198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및 산조 예능보유자로 선정되었다.

참고문헌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6) 판소리유파』(이보형, 문화재관리국, 1992)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7) 산조』 (이보형, 문화재관리국,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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