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정부와 한인 이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설립된한백협회(韓伯協會)가 브라질에 파견한 실무 협의단이다.
1961년 10월 경에 한백협회가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 한백협회는 남미 이민 분위기가 크게 일어나던 1960년 10월에 정인규(鄭麟圭)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당시의 남미 이민은 1960년 이후에 사회 혼란이 일어나 북한의 재남침 우려가 크게 높아졌고, 일본인의 브라질 이민 성공 이야기가 알려져, 남미에 대한 호기심이 갑자기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한백협회는 1926년에 브라질 한인인 김수조(金壽祚)가 창립한 한백문화협회와 교류하면서 이민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특히 김수조가 자기 소유의 땅을 한인 이민자에게 제공하기로 하면서 이민이 성사되었다.
1961년에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브라질 이민 사업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1961년 10월 18일에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이민 정책을 적극 추진하여 관련 행정 부서를 신설하면서활기를 되찾았다. 브라질 정부와 이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한백문화사절단이 조직되었고, 사절단은 1961년 12월 25일에 오후 3시 40분 출발 항공편으로 브라질로 향하였다. 당시단장은 한백협회 회장 정인규가 맡았고, 박종식·한춘교·고광순·이성희·심준열·홍관순·최준덕·김상진·이종만·정수남·목진태·김용·윤훈선 등 14명이 단원으로 참여하였다.
1961년 6월 29일에 브라질 정부는 한인 500가구의 단체 이민을 약속하였는데, 1962년 9월 28일에 브라질 이민국이 정식으로 이주를 허가하였다. 한백문화사절단은 1962년 1월 5일에 브라질의수도인 상파울루(São Paulo)에 도착한 뒤, 귀국 기한인 6월 20일까지 각각 반을 나누어 활동하였다. 사절단 가운데 6명은 실습을 위해서 주립 농사시험장에 들어갔고, 일부 단원은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나머지 단원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민간 외교에 주력하였다. 특히 한인들이 이주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여 상파울루 평원을 직접 답사하였고, 한인 가옥을 짓기 위해서 여러 건물을 조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도로 건설, 상수도와 전기 시설 등에 대한 계획도 세워나갔다. 한편 한국 정부도 1962년 3월에 ‘해외이민법’을 제정하는 등 브라질 이민을 위한 절차를 꾸준히 진행하면서 한국진(韓國鎭) 보건사회부 차관을 단장으로 이민교섭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 실무단은브라질 한인 이민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단체이다. 그 노력의 결과, 1963년 2월 12일에 17세대 103명의 첫 한인 이민자들이 ‘농지 사전 준비대’라는 이름으로 브라질 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