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에 중국 상해와 간도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과 교육에 힘썼다.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상해 호강대학(滬江大學)에 재학하던 중에 상해 청년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상해 청년연맹은 민족주의 우파와 좌파 세력이 대동단결해야 할 필요성을 공감하여 1924년에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특히 상해의 독립운동 활동에서 의열단(義烈團)과 함께 쌍벽을 이루던 강성 조직이었다.
1925년 2월 24일에 상해 청년연맹의 비밀 지령을 받고서 박리행(朴履行), 이규년(李奎年), 신학생(辛鶴生) 등과 함께 조선우선회사(朝鮮郵船會社)의 증기선인 평안환(平安丸)을 타고서 인천에 몰래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인천수상경찰서(仁川水上警察署)에서 신문을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러나 더 이상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음을 알고는 간도로 건너갔다. 6월에 김순구(金順九), 전성호(全盛鎬, 1896∼1950), 김영호(金英鎬), 원태희(元泰熙) 등 20여 명과 함께 북간도의 대성학교(大成學校)에 간도체육기성회를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서 체육을 장려하는 동시에 교육 활동을 돕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