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과 출신지는 알 수 없다.
1929년에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은 당 휘하에 조선혁명군을 두었다. 조선혁명군은 1932년 초에 양세봉(梁世奉, 1896∼1934)이 총사령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김호석은 1934년 9월에 양세봉이 중국 길림성 환인현 소황구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하자 그를 대신하여 총사령을 맡았다. 그 뒤 같은 해 말에 이전의 국민부·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이 통합되어 조선혁명군 정부가 조직되자 군사 책임자인 군사부 부장에 임명되었다.
1935년 9월에 조선혁명군 정부는 중국 자위군(自衛軍) 왕봉각(王鳳閣) 부대와 합작하여 한중항일동맹회(韓中抗日同盟會)를 조직하고, 1936년부터 더욱 강하게 항일전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2월에 조선혁명군 수반이자 한중항일동맹회 정치위원장이던 고이허(高而虛, 崔容成, 1902∼1936)가 체포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김호석은 다시 조직을 일으키고자 하였지만 1938년 9월 6일에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그 뒤 조선혁명군은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