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

국악
인물
해방 이후 「해뜨는소리」 · 「대마루 댓바람」 · 「우헌도곡」 등을 만든 작곡가. 지휘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7년
사망 연도
2003년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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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해뜨는소리」 · 「대마루 댓바람」 · 「우헌도곡」 등을 만든 작곡가. 지휘자.
개설

1960∼70년대 국악작곡계를 이끌었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 1980년대부터 국악 성가곡을 시도하기 시작하여 국악성가 작곡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관현악곡으로 「해뜨는소리(1991)」와 「대마루 댓바람(1986)」을 비롯 10여곡을 작곡하였고, 김병호 산조에 의한 가야금 협주곡 「우헌도곡(1992)」 등 협주곡과 합주곡, 실내악과 독주곡, 성악곡, 연극음악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그가 시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있던 1988년에 처음으로 ‘국악성가의 밤’을 정기공연으로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그의 작품집으로는『국악작곡집』(문예진흥원, 1976)이 있다.

생애

194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67년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현 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하였으며,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립대학에서 수학하고, 1986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골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활동사항

1971년부터 1972년까지 국립국악원의 지휘 담당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1973년부터 1979년까지 국립국악원 전임 지휘자로 있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서울 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하였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는 부산 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지휘자로 활동했다. 1980년부터 한국음악연구소장, 한국문화연구소 공동대표로 활동하였다. 2003년까지 경상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에 작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6년 국립국악원 신국악 작곡 공모 합주 및 독주 부문에 입선하였고, 1967년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 공모 합주부문에 공동 당선, 1969년문화공보부 주최 문예창작품 공모 국악작곡 부문에 당선한 바 있다.

참고문헌

『한국작곡가사전』(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시공사, 1999).
『국악작곡집』(김용만, 문예진흥원,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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