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선인(麻姑仙人)이 산신령으로 있는 석성산 주변 서낭(마가실, 민제궁, 지장실 아래와 위, 버드실 원주당) 다섯 곳을 통합하여 매년 시월상달에 지역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펼치는 대동굿이다.
경기도 일대의 마을의례는 크게 두 형태 것이 전해져 왔다. 하나는 산이(화랭이)와 미지(무녀) 집단에 의한 세습무굿이고. 다른 하나는 신내림을 받은 무녀 및 박수 집단에 의한 강신무굿이다. 용인 할미성 대동굿은 후자에 해당되는 것으로써 경기 남부지역의 대표적인 마을굿이다.
원래 시월상달 길일을 골라 대동굿 또는 서낭굿이라는 이름으로 마을굿을 개최하였으나, 70년대 말 산업화 물결 속에서 건설되어진 영동고속도로 구축 및 미신 타파로 인해 마을당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 다섯 개 당의 당주무당들과 해당 지역민들이 할미성 대동굿으로 통합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할미성 대동굿을 거행하긴 위해선 먼저 석성산 산신제를 행한다. 해발 471m의 석성산(石城山)은 보개산(寶盖山), 성산(城山)으로도 불리며 경기도 용인시 중앙 부분인 기흥구와 처인구에 걸쳐 있는 용인지역의 진산(鎭山)이다.
산신제를 지낸 후 당주가 신대를 잡고 석상산 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신을 내린다. 그리고 풍물패를 앞세우고 마가실 서낭당(잣고개 서낭), 민제궁 서낭, 지장실 윗 서낭과 아랫 서낭 그리고 버드실 원주당 서낭 등 다섯 곳의 서낭돌기를 하면서 서낭신들을 굿청으로 모셔온다. 과거에는 몇 일전부터 마을민들을 대상으로 추렴을 하고 마을민들이 서낭돌기에 참여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대동굿이 시작되는데, 그 제차(第次)는 다음과 같다.
주당물림-앉은청배-산도당할머니거리(산신거리)-불사청궁맞이-호구거리-대신거리- 동자거리-신장거리-관성제군거리-상산거리(장군거리)-대방위굿(헛장거리)-대감굿- 무감서기-별성거리(작도거리)-성주거리-창부거리-내전 등이다.
특이한 것은 상산거리에서 추어지는 월도창검무(또는 월두창검무)이다. 홍철릭을 입고 홍갓을 쓴 무녀가 왼손에 청홍백의 삼색기 그리고 오른손에 월도창검을 들고 돌리면서 장엄하고 격렬한 춤을 춘다.
대방위굿에서는 귀신의 장난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 또는 사업 안 되는 사람을 위하는 헛장의례가 펼쳐진다. 즉 해당 사람을 죽은 것처럼 가장하고 그 사람이 입었던 속옷을 북어에 입힌 후 입곱매기로 묶는다. 가족들이 곡을 하여 헛장을 치루고 나면 해당 사람은 대수대명하여 회생케 된다.
할미성 대동굿의 모체가 된 다섯 개 당의 전승자는 다음과 같다.
장재관(마가실 서낭 및 버드실 원주당 서낭 당주)만신, 나인순(장재관 신딸, 마가실 서낭 및 버드실 원주당 당주)만신, 권옥기(장재관 신딸, 마가실 서낭 및 버드실 원주당 마을굿 참여)만신, 이래철(마가실 서낭 및 버드실 원주당 서낭 당주)만신, 박양금(버드실 원주당 당주)만신, 최춘자(지장제 웟서낭 및 아랫서낭 당주)만신, 조막손(민제궁 서낭 당주)만신, 최금녀(버드실 원주당 당주, 열두 작도만신)만신, 신후진(다섯 개 마을굿 전승자)만신 등이다.
이들은 작고하기 전 자신들의 의례를 현재의 전승자 유성관 박수에게 전수하였다. 유성관(劉聖寬)은 11살에 신병을 앓은 후 82년 7월 15일 신어머니 권옥기와 신아버지 이내철로부터 신내림을 받고 석성산 할미를 뭄주신으로 모시고 할미성대동굿보존회 회장을 맡아 대동굿을 이어오고 있다.
옛 전통을 살리고 마을의 대동단결을 모색하기 위한 오늘날의 할미성 대동굿은 각성(各姓)마다 내어 온 꽃반을 굿청에 차려 놓고 소지올림을 하여 마을 단합을 축원하고 각 개인의 무병장수와 안과태평을 소망한다. 이로써 오늘날의 할미성 대동굿도 과거와 같이 치유와 공유라는 긍정적 가치를 갖는 경기 남부지역 마을굿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