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숙(宋東淑, 1928∼2006)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서 아버지 송도성과 어머니 박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송동숙의 집안은 원래 무속집안이 아니었다. 증조부가 대구에서 진사 벼슬을 지내다 누명을 쓰고 울진군 평해로 피신하여 굿하는 집 머슴살이를 살다 무당 딸과 혼인하면서 송씨 일가의 무업이 시작된 것이다.
송동숙의 증조부는 대근(大根) · 대봉(大鳳) · 학봉(學奉) 세 아들에게 무업을 전수했다. 빼어난 장구 명인으로 알려져 일명 ‘왕장고’로 이름을 날린 송동숙의 할아버지 송학봉은 이화선 무녀와 결혼하여 울진의 평해 기성을 중심으로 크게 무업을 펼쳤다. 목청 좋고 춤새 좋은 이화선 또한 일대에서 유명 무당으로 알려졌다. 이들 사이에서 일선(一善), 도선(道善), 기성(基成)이 태어났고, 둘째 아들 도성이 송동숙을 낳았다.
송동숙의 두 형은 어려서 사망하였고, 송도성은 아들 송동숙이 3살 되던 해 사망하였다. 송동숙이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제갈성도와 재혼하자, 그는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고 할머니 집에 남아 한문 서당에 다녔다.
송동숙은 아홉 살 되던 해 할머니가 사망한 후, 외가에서 생활하였지만, 열한 살 무렵부터는 재가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송동숙은 이때부터 의부 제갈성도의 굿판을 따라다니며 무학습을 하였는데 그 기간이 7년이다. 처음에는 꽹과리와 징을 맡아 약바라지를 하였지만, 차츰 주바라지 장구를 배웠다. 이 후, 그는 강릉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던 송순택에게서도 무악을 배웠다. 그러다가 송동숙은 열일곱 살 되던 해인 1944년 강제 징용되어 일본 홋카이도 백금광산에서 노동을 하다 광복이 되어 귀국하였다.
1946년 가을, 울진 출신 변연호(邊蓮湖)와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고, 1952년에 큰 딸 명희를 낳았다. 그리고 늦은 나이인 26살에 군대에 입대하였지만, 군복무 중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의가사로 제대하였다. 1954년 제대 후 정환과 상환 두 아들을 낳았다. 그 후, 변연호와 갈라서고 굿판에서 만난 김미향(金美香) 무녀와 재혼하였고, 무업을 확장하기 위해 영해읍내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고 영해의 제갈성도, 주문진의 송순택, 죽변의 변성문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굿일을 시작하였다.
송동숙의 주바라지 장구 솜씨는 물론이고 꽹과리 등 모든 무악기를 다루는 재능이 뛰어 났다. 송동숙의 드릉갱이, 삼오동, 거무, 푸너리 등의 장단은 천상의 천동대신을 위한 소리로 평가된다. 땅의 지동대신을 위한 징소리, 하늘과 땅 사이인 중천의 광분대왕을 위한 꽹과리 소리, 비상하는 날짐승을 위해 올리는 천왕대신을 위한 바라의 쇳소리와 화음 내어 신령을 감동시키는 소리였다.
송동숙은 소리와 춤에서도 대단한 실력을 갖추었다. 동해안 세습무속에서 쓰이는 지화제작에도 남다른 재주를 갖추었다. 이러한 재능을 갖춘 송동숙은 동해안 지역의 정통한 세습무속의례 전승자로 인정되어 1980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영해별신굿놀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