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서낭제는 매년 정월, 삼월~오월, 구월 중 택일하여, 마을 서낭당에서 주민들이 서낭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이다. 동제, 서낭굿, 서낭거리라고도 한다. 산천, 수목, 암석 등의 자연숭배가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 신앙과 융합하여 서낭 신앙이 되었다고 여긴다. 서낭제의 제관은 부부가 생존하여 화목하게 지내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다. 제관으로 뽑히면 수일 전부터 금기하면서 제물을 준비한다. 택일날 신목이나 돌무더기 앞에 제물을 차리고 서낭제를 치른다.
정의
매년 정월, 삼월~오월, 구월 중 택일하여 마을 서낭당에서 주민들이 서낭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제사. 동제.
개설
무당 신당에서도 서낭신이 모셔지는데 이때는 호랑이 그림으로 그려진 무신도로 형상화된다. 이와 같이 서낭은 동물로 상징화되기도 하지만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성별 구분이 없기도 하고 또는 남녀 구분에 의해 남서낭과 여서낭이 존재하기도 한다. 해안지역의 뱃사람들은 배 내부 한곳에 배서낭을 모셔두고 항해 안전과 풍어를 소망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 문헌에 성황(城隍)이라는 용어가 쓰인 최초의 사례는 고려인데, 이때는 이미 중국 영향으로 인해 ‘서낭’이라는 용어가 한자어로 표기되어졌다. 『고려사(高麗史)』권90 열전3 「종실조」에, 안종 욱(郁)이 사수현 귀양에서 996년(성종 15) 죽을 때 아들에게 자신이 죽게 되면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에 매장해 달라는 유언 속에 ‘성황(城隍)’이 쓰였고, 『고려사』권63 지17 예5 「잡사조」에서도 1055년(문종 9) 3월 임신일 선덕진(宣德鎭) 신성(新城)에 성황신사를 두고 숭위(崇威)라는 칭호를 내리고 봄가을에 치제(致祭)하게 하였다라고 하고 있다. 이로써 이 무렵에는 전래된 서낭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성황과 융합되어져 ‘성황(城隍)’이라는 용어가 지배층의 식자들에 들에 통용됐음을 알게 한다.
행사내용
전자의 경우는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의례를 행한다. 길가는 사람은 이 앞을 지나면서 돌을 하나 던지고 침을 뱉는 행위와, 정월에 여인들이 횡수막이를 한다고 가족의 옷 가운데서 동정을 뜯어 제물을 차려 신목 아래서 정성을 드리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는 달리 동제 또는 부락제의 한 제차로 삼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다.
또한, 서낭제를 치르는 횟수는 마을에 따라 다르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곳도 있지만, 두 번이나 또는 세 번 치르는 곳도 있다. 제의 날은 대체적으로 정월달, 삼월달, 사월달, 오월달, 구월달 중 택일하여 행한다.
도가(導駕), 제주(祭酒), 제관(祭官), 화주(貨主) 등으로 불리는 제의 집행자들은 마을 남자 원로들이다. 제관으로 뽑히기 위해서는 부부가 생존하여 화목하게 지내야 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집안에 초상이 났거나 임신자, 출산자, 환자가 있으면 안 된다. 제관으로 뽑히면 수일 전부터 금기(禁忌)하면서 제물을 준비한다.
현황
이런 점에서 중부이북지방에서는 서낭당이 마을신이기 때문에 모시기는 하지만, 마을의 주신은 아니고 주신인 산신을 모시고 나서 모시는 부수신적인 성격이 있는 것 같다. 강원도 · 경상도 산간지방에서는 서낭신을 강신시키는 신간인 서낭대를 세우고 신을 강신시켜 모셔놓고 굿을 하는데, 이를 서낭굿 또는 별신굿이라 한다. 이 서낭의 주신을 ‘골매기서낭’이라 하여 남신 또는 여신으로 인격화하는 경우도 있으니, 대관령서낭에는 남녀 신당이 있고, 또 전설이 있어서 확실한 모습을 말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광나루마을의 서낭제를 보면, 서낭제 전 무녀가 모래밭에서 부정치기를 한다. 이때 제관 두 명이 수서낭에 제물을 차리고 재배(再拜)한 뒤, 수서낭을 모시고 바닷가에 위치한 암서낭으로 모셔 가서 합배(合配)한다. 제수를 진설하고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등이 헌작(獻爵)하고 재배한다. 이어서 무녀가 부정굿과 서낭굿을 하고 도가 소지(所志)를 올린다.
소지가 끝나면 용왕굿을 한다. 또한 잡귀잡신을 위해 제수(祭需)를 일부 떼어 바다에 던진다. 그리고 암서낭에서 수배신을 위한 굿을 한 후 참석자들이 음복(飮福)한다. 제의 뒤에는 금줄을 걷고, 도가나 제주는 사흘 동안 부정을 피하고 몸가짐을 조심한다. 그 후에도 부정한 곳의 출입 금지 및 금기 생활을 보름 또는 반년동안 지킨다.
서울 이태원 부군당의 서낭당에서는 매년 부군당굿이 열릴 때마다 서낭제가 행해지는데 이를 서낭굿 또는 서낭거리라고 한다. 부군당 당집 전각 정문 앞의 담장을 따라 약 20m 정도 언덕 밑쪽으로 내려가면 서낭당이 있다. 이곳 서낭당은 지형이 움푹 파져 이태원 부군당 터 일대에서 가장 지면이 낮은 곳이다.
서낭당에는 주로 엄나무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감싸고 있다. 또한 서낭목으로 지정된 엄나무 한 그루가 있고, 나무에 오색 천과 새끼줄로 치장해 두었다. 무녀가 이곳에서 간단한 제물을 올리고 춤을 추어 강신을 한 후 서낭공수를 내린다. 서낭굿이 끝나면 새롭게 장만한 북어를 서낭목에 매단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마을신앙』(국립민속박물관, 2007)
- 『서울 이태원 부군당굿』(양종승, 민속원, 2007)
- 『서낭당』(이종철 외, 대원사, 1994)
- 『부락제당 』(이두현 외, 문화재관리국, 1969)
- 『부락제(部落祭)』(村山智順, 조선총독부, 1937)
- 「서낭제」(김승찬,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11)
- 「순창과 강릉 성황제의 비교 고찰」(장정룡, 『성황당과 성황제』, 한국종교사연구회편, 1998)
- 「강원도 서낭신앙의 유형적 연구」(장정룡, 『한국민속학』22, 1989)
- 「누석단신수·당집 신앙연구」(조지훈, 『조지훈전집』7, 일지사, 1973)
- 「서낭당의 명칭 고」(김태곤, 『국제대학보』, 국제대, 196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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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어떤 일을 치르거나 길을 떠나거나 할 때 운수가 좋은 날을 가려서 고름. 또는 그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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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 죽은 사람의 사진이나 지방(紙榜) 따위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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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그해의 뜻밖에 당하는 재앙으로 인한 불행을 막으려고 음력 정월에 무당을 불러 하는 굿.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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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한복의 저고리 깃 위에 조금 좁은 듯하게 덧대는 하얗고 긴 헝겊 조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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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서낭신을 위하는 굿. 무당이 음식을 차려 놓고 노래와 춤으로 신을 즐겁게 하여 복을 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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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동해안 일부와 충남 은산에서 전하여지는 복합적인 형식의 부락제. 유교식으로 제관이 축문을 읽은 뒤, 무당이 나와 굿을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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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집 안에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행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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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제사 때에, 술잔을 올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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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두 번 절함. 또는 그 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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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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