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천(朴秉千, 1933∼2007)은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박범준과 김소심의 2남 3녀 중 넷째(차남)로 태어나 74세로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집안은 진도 세습당골 명가로, 조부는 대금 명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명인 중의 명인이었다. 타계 당시 일제강점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천한 신분이었지만 진도군장(珍島郡葬)으로 지내졌을 정도여서 진도 신청(神廳)의 당골과 고인(鼓人) 계보는 그의 집안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들 밑에서 어정(굿)판을 따라 다니며 악가무를 익혔고, 7세 때에는 마을 농악판 무동으로 활동하면서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장성한 후, 18세부터는 판소리 명인 박동준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30세에는 호남춤의 명무 이매방에게 전통무용을 배우기도 하였다.
1952년 목포상선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뿌리깊은 당골집안의 후예답게 천부적인 재능을 배경으로 악가무 명인이 되었다.
1960년대 초 진도고등학교에서 농악강사로 재직하였고, 이 후 한국국악협회 진도지부장, 진도국악원장, (사)민속놀이진흥회 이사장, 코리아하우스 악사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대불대학교 국악과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1980년 11월 17일 진도씻김굿이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자 47세에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박병천 무계에서 행하여 온 씻김굿은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대표적인 진도굿이 되었다. 그는 씻김굿뿐만 아니라 무용예술세계에서도 크게 활약하였는데 그 대표작이 진도북춤이다. 한국무용계의 내놓으라하는 중견무용가들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었던 「박병천문화재전수소」에 드나들면서 진도북춤을 사사받아 무용무대를 통해 공연됨으로써 한국무용의 주요한 소재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른바 ‘박병천류 진도북춤’은 원래 농악판에서 놀아졌던 북놀이였지만, 그 가락과 춤사위를 다듬고 또한 무대형식으로 승화시켜 무용예술이 된 것이다.
양손의 북채로 양북면을 두드리며 천지를 울리고 신명을 북돋는 춤새를 구사하여 흥을 자아낸다. 춤사위들은 독수리가 하늘을 노니는 듯하고 높다른 폭포수가 지하로 내리 꽂히는 듯 용맹스럽고 장엄하며 또한 웅장하다.
그의 무용예술 중 또 다른 하나는 지전춤이다. 진도씻김굿 중 제석거리에서 추어지는 굿거리춤과 지전을 들고 추는 춤을 바탕삼아 무용예술로 구성한 것이다. 춤 내용은 무속의례에서도 그랬듯이 산자 명복을 비는 축원무 형태이다. 이 외에도 굿거리춤이나 고풀이춤 등도 많은 호평을 받게 된 박병천의 춤들이다.
그는 이와 같은 춤예술뿐만 아니라 소리에도 빼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특히 그의 구음소리는 하늘을 닿는 영혼의 소리라고 할 정도였다.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또한 지극히 자연적인 구음은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는 영(靈)의 소리로 평가되어 진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수많은 공연을 하였다. 1981년 국제민속예술제 초청 유럽 6개국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1984년 LA올림픽 개막축제 공연, 1985년 베를린 국제민속음악제 국가대표 유럽 7개국 순회공연 등을 펼쳤다.
1990년에는 LA 아 · 태지역 토속신앙 페스티벌 공연, 1994년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 공연 ‘진도씻김굿’ 미국 순회공연, 1999년 독일 ·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유형문화 전시 · 무형문화재 공연, 독일 세계문화의 집 초청공연, DMZ-2000 백남준 비디오 씻김 공연지도 및 출연 등도 하였다.
또한 2005년 러시아 나라음악 큰잔치 공연, 2006년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 기념공연, 2007 한 · 베트남 수교 15주년 기념공연 등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그에 의해 다듬어진 진도의 대표적 유산들은 진도 씻김굿을 비롯한 남도 들노래, 강강술래, 진도 다시래기, 진도 만가, 진도 북놀이, 진도 닻배노래 등이 있으며, 이들은 훗날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또는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향토문화에 인위적 연출을 가해 소박한 토속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제기하였지만, 체계성을 갖춘 계승력과 대중화 발판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남긴 음반으로는 「박병천의 구음다스름」, 「한국의 슬픈 소리」, 「진도 씻김」, 「강강술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