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서울새남굿의 예능보유자로 서울굿의 대감방으로 명성이 높았던 큰무당이다. 친정어머니 반승업은 무당들 사이에서 삼신방이라고 불리었던 큰무당이었고, 오빠 김만용은 잽이로 활동하였다.
김유감은 6살 되던 해인 1930년 정월달 소꿉장난을 하다 손뼉을 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비범한 행동을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한 소리를 하면서 껑충껑충 뛰어 다니자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신이 온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신당 앞에서 좌정시켜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악봉에 올라가 종이에 싸서 파묻어 둔 방울부채와 엽전을 구업이로 캐왔다. 두 해를 넘긴 후,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순정어머니, 칠성네할머니, 호량십장, 바둑어머니를 모시고 신굿을 받았다. 이 후, 친어머니이면서 스승이 된 반승업 무당으로부터 서울굿 문서를 학습했다.
1996년 서울 새남굿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무렵을 전후하여 강윤권, 한부전, 이상순 등과 함께 새남굿을 무대에 올리면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서울 새남굿의 첫 번째 보유자로 인정되자 많은 애동들이 내림굿을 받거나 무당들이 신붙임굿을 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무당들과 함께 서울새남굿보존회를 결성하였고, 새남굿을 배우려는 만신들을 대상으로 서울무형문화재전수회관(현,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과 왕십리에 있었던 자신의 집에서 굿 문서를 전수하였다.
고령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거동이 불편해지자, 제자들 굿판에서 앉은청배만을 하거나, 장구장단을 치는 역할만 하였다. 2007년에 명예기능보유자가 되었고, 85세가 되던 2009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