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금순

  • 종교·철학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해방 이후 「호남 당골굿」 보유자로 지정된 무속인. 세습무.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2009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927년
  • 출생지전라북도 정읍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양종승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전금순은 해방 이후 호남 당골굿 보유자로 지정된 무속인으로 세습무이다. 1927년 전라북도 정읍시 출생으로, 세습무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전북의 마지막 세습당골로, 80여 년간 전통 당골굿을 지켜온 인물이다. 그녀는 친가, 외가, 시가 모두 무속과 국악에 깊이 연관된 가문 출신으로, 여러 마을에서 당산굿과 가정 씻김굿을 주관했다. 1994년 전북도립국악원 연주가의 반주로 전북예술회관에서 ‘씻김굿 춤’을 선보였으며, 2009년 사망 전까지 간단한 소리와 춤을 선보였다. 후계자를 양성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이 당골굿은 전수되지 못했다.

정의

해방 이후 「호남 당골굿」 보유자로 지정된 무속인. 세습무.

생애

전금순(全今順, 1927∼2009)은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세습무 집안의 부친 전생경과 모친 최소녀 사이의 3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할아버지 오형제는 무속계 · 국악계 · 농악계 등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로서, 장구잽이와 쇠잽이로 명성을 날렸던 전이섭 · 전사섭 · 전사종 등이 첫째 큰할아버지 전학술의 아들들이다. 둘째 큰할아버지 전광오의 자손 전도성 명창과 셋째 큰할아버지 전기옥의 자녀 전계문 고수 그리고 넷째 큰할아버지의 자손 전주옥과 전홍근 등도 당대에 이름을 날렸던 명인들이었다. 또한 친할아버지 전극공은 다섯 형제 중 막내로써 평생동안 고인(鼓人)의 삶을 살았고, 아버지 전생필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인으로서 삶을 살았던 당골네 자손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판소리를 잘 하였지만 고수로도 재능이 있었고, 농악판에서도 소고를 쳤던 타고난 재능꾼이었다. 그리고 순창 출신의 남편 성씨 집안은 설장고 명인 성수남를 비롯한 성운선 · 성채란 · 성금화 등의 판소리 명창 그리고 가야금 명인 성금련 등을 배출하였다.

이와 같이 전금순의 친가와 외가는 물론이고 시가까지 여자들은 당골이나 소리꾼으로 명성을 얻었고 남자들은 굿판 악사나 농악판의 쇠잽이와 장구잽이가 아니면 소리판 명창이나 춤판 고수로 큰 활약을 하였다.

활동사항

전금순은 바뀌어 가는 세상살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몸에 배인 옛 당골 굿판의 전통을 짊어지고 80여 년 세월을 버티었던 전북의 마지막 세습당골이었다. 그의 소리와 춤과 재담은 어린 나이부터 학습을 거쳐 완성된 것이었기에 전라북도 일대에서는 큰 당골로 알려져서 때가 되면 여러 마을에서 그를 반겼다.

그녀가 활동하였던 옛 정읍 일대의 당골판 마을들은 칠석리(七夕里)의 됫골(칠석), 시목, 성칠, 외칠, 내칠, 농원, 정골(현재는 없어지고 됫골마을과 합쳐짐), 그리고 오성리(五星里)의 방죽안(제내), 일리(방죽리), 작소, 두립, 금산동(현재는 없어지고 제내마을과 합쳐짐) 등이었다. 그녀는 이들 마을을 대상으로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보리와 나락을 걸립하는 대신 마을 당산굿과 가정 씻김굿 등을 해주었다.

2009년 사망하기 전까지도 그녀는 이따금씩 공연 무대에 나가 간단한 소리를 하고, 굿춤을 추기도 하였다. 굿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라북도의 마지막 당골이 보여주는 ‘씻김굿 춤’을 추는 것으로써 세습당골의 한 면을 보여준 것이었다.

1994년에는 전북문화저널이 기획한 「전라도 춤 전라도의 가락-셋」이 6월 25일 전북예술회관에서 두 차례 공연되었는데, 이때 전태준(대금), 이성근(장고), 강정열(아쟁), 김계선(가야금), 한정순(거문고) 등 전북도립국악원 소속 연주가들이 반주를 맡아서 전금순의 「씻김굿 춤」을 선보였다. 이 후에도 그녀는 무대 공연에 초청될 경우 전북도립국악원 연주단 음악에 맞춰 출연하였다. 하지만, 이들 공연보다는 전금순 의례에서 중요한 것은 당산굿이었다. 마을 원로들이 유교식 제사를 지내고 나면 당골과 고인(鼓人: 잽이)들이 선거리 굿으로 성대하게 치러지는 마을굿으로서의 당산굿은 전금순의 특기였던 것이다.

전라북도 일대의 당골 의례는 집안 혈통에 따라 대물림한 세습무들이 주가 되어 의례를 거행하여 왔는데, 이들 당골들은 마을 안녕과 각 가정의 부귀영화를 위해 당골판을 지켜왔던 지역 신앙의 지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당골 전금순의 의례는 여동생 전영애(1934년생)도 언니의 굿을 받아들이지는 못했고, 후계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뒤늦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호남 당골굿 보유자로 인정되었지만,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전금순의 호남 당골굿은 전수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실태조사 보고서-당골 전금순과 무속의례』(양종승,전라북도 무형문화재위원회, 2005)

  • - 「전북지역 무당굿 연구」(이영금,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 - 「전북의 마지막 당골 전금순과 굿」(양종승, 『민속소식』1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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