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 (의 underground )

대중음악
개념
대중음악 가운데 주류에 속하지 않는 조류를 통칭하는 음악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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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대중음악 가운데 주류에 속하지 않는 조류를 통칭한다. 주류와 대립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비주류, 마이너, 대안, 인디 등과 혼용되기도 한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에 정치권력의 대중문화 통제의 대항 개념으로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조동진과 이정선을 중심으로 일군의 음악인들이 모여들어 동아기획 등과 같은 하나의 ‘사단’을 형성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대중문화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극심한 시기에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하나의 미학을 확립했다.

정의
대중음악 가운데 주류에 속하지 않는 조류를 통칭하는 음악용어.
개설

대중음악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는 지하(地下)라는 뜻으로, 지상(地上)에 오르지 않거나 혹은 오르기를 원치 않는 지향과 태도를 뜻한다. 통상 주류(主流)와 대립되는 뜻으로 사용되고, 그 점에서 비주류, 마이너(minor), 대안(alternative), 인디(indie) 등과 혼용되기도 한다.

주류의 관습, 가치, 신념을 거부하는 비타협적 태도가 강할수록 언더그라운드라는 호칭이 적합하다. 주류의 상업적 음악과 구분되는 진정성(authentic) 있는 음악, ‘음악다운 음악’을 추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음악 매니아’가 선호하는 음악이자 소장가치가 있는 음반을 제작하는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지상과 지하의 경계는 유동적이므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이 용어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에 특정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배경은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 이후 엄격하게 제도화된 검열제도다.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와 방송에 대한 사후심의제도로 인해 음악인이 음반을 발표하고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많은 규제정치를 통과해야 했다.

즉, 한국에서 언더그라운드는 정치권력의 대중문화에 대한 통제에 대한 대항 개념으로 등장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적으로 통제되고 있던 지상파 TV의 음악 쇼 프로그램의 관습을 거부하는 지향과 태도를 뜻하게 되었다. 일부에서 한국의 언더그라운드는 진정한 언더그라운드가 아니라 ‘언더브로드캐스팅(underbroadcasting)’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특수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장르적으로는 ‘포크’나 ‘록’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민중가요’나 ‘헤비 메탈’의 경우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일정한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면서도 좁은 의미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구분되었다. 현실적으로는 각 장르들 사이에 복잡한 중첩이 발생했다.

내용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지상파 TV에 출연하는 것을 거부했고, 나이트클럽 등의 상업적 업소의 무대에도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음반 발매와 라디오 방송(radio airplay)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고, 종로, 신촌, 대학로 등지의 소극장에서 라이브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했다. 언더그라운드의 ‘대부’의 칭호를 받는 사람은 싱어송라이터 조동진(1947∼ )과 이정선(1950∼ )인데, 이들은 1970년대 포크 음악 커뮤니티의 일원이었지만 통기타 음악을 벗어나 록, 블루스, 퓨전 재즈 등을 실험한 개성 있는 스타일을 창조했다.

1980년대 이후 이 두 인물 주위에 일군의 음악인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사단’을 형성했다. 1980년대 중반 이들이 이끈 일군의 음악인이 동아기획(대표: 김영)에 모여들었고, 동아기획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오리엔트 프로덕션(대표: 나현구), 대성음반(대표: 이흥주), 뮤직디자인(대표: 서희덕), 신촌뮤직(대표: 장고웅) 등도 넓게 보아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음반을 제작하고 음악인을 관리한 기획사 혹은 음반사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1985년 록 밴드 들국화가 음반 판매와 콘서트 흥행 모두에서 기록적 성공을 거두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해바라기, 시인과촌장, 어떤날, 한영애, 정태춘, 김현식, 유재하, 봄여름가을겨울, 동물원, 김광석 등이 하나의 집단적 흐름을 형성하면서, ‘언더그라운드’라는 호칭은 TV에 얼굴을 비추지 않고서도 음반 제작과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자기재생산이 가능한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의 시기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전성기였다. 검열제도가 느슨해지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음반 발매와 방송 출연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고, 일부는 ‘스타’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지상파 TV를 주요 무대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류 대중음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현황

1992년 이후 댄스 음악이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면서 19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전성기는 지나간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자의(字意)에 부합하는 음악은 지속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인디’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를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는 실천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의의와 평가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극심한 시기에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하나의 미학을 확립했다. 또한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한 시대의 공유된 정서를 노래하여, 당대의 이념적 대립을 넘어 폭넓게 사랑받았다. 한 예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절반 정도가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 음반리뷰』(박준흠, 도서출판선, 2008)
『한국 팝의 고고학 1970: 한국 포크와 록, 그 절정과 분화』(신현준·이용우·최지선, 한길아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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