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놀이는 동짓날 저녁에 경상남도에서 이웃 서당의 학동들과 등불을 가지고 싸움하던 소년놀이이다. 풍등은 등싸움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출발의 신호로 띄우는 대형 풍선을 말한다. 본격적인 등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우선 등제를 치른다. 이후 풍등을 띄워 공중의 체재시간과 놀이로써 우위를 판가름한다. 풍등의 재료는 한지·대·철사·솜 등이다. 서당이 없어진 지금 등싸움 놀이는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통영에서 매년 개최되는 한산대첩제에서 풍등놀이를 재현한다. 여기에서의 놀이 내용은 과거와 다르지만 풍등의 규모나 모양은 옛것을 본떴다.
등쌈(싸움)은 서당의 생도들이 이웃 서당의 생도들과 등(燈)을 가지고 싸움하는 놀이인데 현재에는 하지 않으나 풍등만은 남아 있다. 이 놀이는 연희가 시작되기 직전 풍등이라는 일종의 대형풍선(大形風船)을 공중에 띄워서 출발의 신호로 삼았다는데 이는 임란(壬亂) 당시에 군(軍)과 군 사이의 신호연락용으로 쓰였다고 하며, 현재는 통영(統營)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는 한산대첩제(閑山大捷祭)에서 이를 기념하여 풍등놀이라는 대회를 연다. 여기에서의 놀이는 옛날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되어 있으나 등의 규모나 모양은 옛것을 본뜬 것이다. 즉 각동(各洞)마다 풍등을 만들어 띄우되 공중의 체재시간과 놀이로써 그 우위를 판가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등쌈은 서당이 없어진 지금 그것도 자연히 없어졌다.
경기의 순서 및 모양은 등쌈이 시작되기 직전 우선 등제(燈祭)라는 것을 치르는데 서당의 대궁(보)에다가 ‘××서재지구(書齋地區)’라고 쓴다. 이는 매미채처럼 테를 메운 하나의 풍선이다. 그 원리는 아주 과학적으로 풍선을 거꾸로 하고 아래에서 솔가지 같은 것으로 불을 지펴 연기를 채우면 외기(外氣)보다 공기가 가벼운 탓으로 공중에 뜨게 되는 것이다.
공기가 차기 시작하면 풍등은 들썩들썩 시작하기 때문에 장정 서너 명이 붙들고 있어야 한다. 연기가 다 차면 띄우는데 아래쪽에 매달아 둔 기름솜뭉치(약 3일간 석유 속에 담근 것)에 불을 붙이면 공중에 올라가서 등이 올라갔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풍등은 등쌈 끝에 승자 편에서는 자축의 뜻으로 다시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풍등의 재료로는 한지(韓紙) · 대(竹) 혹은 철사 · 솜 등이다. 이렇게 하여 풍등을 띄우고 나면 미리 약속해 둔 시합장(주로 朝市場)에 나가는데 싸움에 사용할 등을 앞세우고 노래를 부르며 의기양양하게 전진한다. 앞세운 등은 1등 ·2등 ·3등이며, 초롱등은 각기 하나씩 들고 간다.
1등은 창호지 10장으로 만들어서 높이 10척(尺) 정도의 대나무 장대 끝에다 매어달고, 2등은 창호지 4매로 만들어서 7척 정도의 장대 끝에 매달며, 3등은 창호지 2매로 만들어서 4척 정도의 장대에다 매어단다.
조시장에 도착하면 각각 진(陣)을 치고 임전태세에 들어가게 되는데 동쪽에서 오는 편은 동에다 진을 치고 서쪽에서 오는 편은 서에다 진을 치게 된다. 진을 치는 모습은 1등을 가운데 세우고 그 주위에 여럿이 모이어 1등을 보호 옹위한다. 그리고 이 중앙을 가운데로 하여 2등 ·3등과 원형으로 에워싼다.
진을 치고 나면 드디어 접전이 시작되는데 접전의 신호는 밥주걱 2개로써 3번을 치는 것이다. 생도들은 ‘자―’ 하는 환성을 지르며 2~3척 정도의 막대를 가지고 상대방 진에 있는 1등을 공격하여 먼저 등속의 촛불을 끄는 편이 승리하는 것이다. 승부는 잠시 순식간에 나는데 심판은 보통 구장(區長)이나 서당의 접장이 맡았으며 참가팀의 제한은 없고 서당의 수에 따라 증감이 생긴다.
현재 통영에서 매년 개최되는 한산대첩제에서 이를 재현하는데, 놀이내용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지만 풍등의 규모나 모양은 옛것을 본떠 의의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