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9월 경상남도 김해에서 부친 배익태(裵翊台)와 모친 홍풍식(洪豐植)의 3남으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어려서부터 가학(家學)으로 천자문을 배우며 글씨를 익혔다. 국내에서 중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41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법과(法科)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이듬해 부산 초량상업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부산 경남중학교 교사, 동아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미술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교육계에 몸담았다. 1999년 음력 11월 22일 별세하였다.
근대기 대구의 서예가 회산(晦山) 박기돈(朴基敦)으로부터 시암(是菴)이란 호를 받았으며, 이외에도 시암(時菴) 또는 시암(時闇)이란 호를 같이 썼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시옹(是翁) 또는 시옹(時翁)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다. 오세창(吳世昌), 안종원(安鍾元)에게 사사하여 오세창으로부터는 전서를, 안종원으로부터는 예서를 전수(傳受)하였다. 그는 특히 청나라 말기의 서화가 오창석(吳昌碩)의 필의(筆意)에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자형을 가미하여 방정함이 드러나는 독특한 전서 서풍을 이루었다.
1952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듬해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추천작가와 당시 문교부 예술과 과장을 거쳐 1957년에는 최연소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65년 한국서예가협회 발족 당시 대표이사를 맡은 이래로 국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문화재위원(현, 문화유산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작품으로 「의암 손병희선생 유허비문(義庵孫秉熙先生遺墟碑文)」(1962), 「이육사 시비(李陸史詩碑)」(1964), 「외솔 최현배선생 묘비문」(1970), 「흥무대왕 김유신 유허비문(興武大王金庾信遺墟碑文)」(1983), 「봉선사 설법전 편액(奉先寺說法殿扁額)」(1984), 「서애 유성룡 어록 비문(西厓柳成龍語錄碑文)」(1987) 등이 있다. 저서로 중등학교 검인정 교과서 『새글씨본』, 문교부검정 국민학교 『글씨본』, 중 · 고등학교 『글씨본』이 있으며, 김충현 공동 편저 『서예대전집(書藝大全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