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읍도」의 정확한 제작 시기와 제작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성벽과 성문을 포함한 자세한 성곽의 모습과 읍성 안 주요 지리정보의 표현 방법, 읍성 주변의 산세를 표현한 방법 등을 보면 조선 후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초 통제영 · 병영 · 수영에 화원을 파견하던 화사군관(畵師軍官) 제도가 1740년(영조 16)부터 감영(監營)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는 18세기 이후 도화서(圖畫署) 화원을 주요 지역의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조선 후기 주요 지역의 회화식 지도는 각 군현의 입지, 주요 건물과 사적, 시장 등의 지리정보를 「함흥읍도」와 같이 구체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다. 이렇게 제작된 지도는 지방행정관의 행정과 통치에 사용하였으며, 「함흥읍도」 역시 이와 비슷한 목적을 가졌을 것이다.
조선시대 함경도 감영 소재지였던 함흥 일대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이다. 함흥은 함경도 감영 소재지이자 관북 최대의 고을로,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시 신흥군, 영광군, 함주군 일대 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함흥지도(咸興地圖)」와 「함흥부지도(咸興府地圖)」에 비해, 읍성 일대를 확대하여 그 모습을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함흥읍성(咸興邑城)은 북쪽의 산지와 남쪽의 평지를 동시에 포괄한 긴사각형 형태의 평산성으로, 지도에는 성문과 누정, 성벽 등의 성곽 시설을 매우 자세하게 그려 놓았다. 이외에도 읍성 안에는 선화당(宣化堂)을 포함한 주요 관아 건물을, 읍성 안팎으로는 일반 민가들을 자세히 그려 놓았다. 성천강(成川江) 만세교(萬歲橋) 위 나귀를 타고 가는 양반의 모습과 성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숲 역시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상세히 표현하였다.
조선 후기 군현 지도의 발달과 함께, 수도인 서울뿐만 아니라 평양 · 전주 · 함흥 · 청주 등의 감영 소재지와 일부 큰 고을의 중심지를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가 제작되었다. 이것들은 대부분 병풍 또는 족자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함흥읍도」 역시 지리정보를 자세히 보여 주는 지도적 특징과 함께, 예술적 특징을 담고 있는 지도이다. 특히 단독으로 제작된 다른 함흥부 지도와 비교하면,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곳인 본궁(本宮) 등 읍성 밖의 지리적 정보를 최소화하고, 읍성 중심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지도만의 특징과 제작 목적 및 활용도를 파악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