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제작된 백자 동화원형문각호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9년 1월 2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각형을 이루는 동체부에 산화동 안료를 이용하여 원형을 구획하고 그 안에 간결하게 문양을 표현하고 있다.
동화(銅畵)란 '진사(辰砂)'라고도 불리는데, 산화동이나 탄산동이 주원료인 안료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 장식 기법을 일컫는다. 제작상 발색이 까다로워 무늬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산화동은 고려시대에 등장한 이후 조선 전기에 잠시 주춤하다가 17세기 이후 들어 다시 제작되었다. 동화백자 무늬 중 호랑이, 학, 소나무 등 장수와 길상을 상징하는 민화풍의 내용과 연꽃, 승려 등 불교적인 내용은 18세기 이후 백자 수요층의 확대로 왕실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나 중인 계층이 백자를 선호하면서 문양에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하려 했던 당시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존하는 동화백자 유물 중에서 1684년(숙중 10)에 제작된 숭정 갑자(崇禎甲子)명 동화묘지석이 최초의 작품이어서 17세기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17세기에 접어들어 붉은색 칠기가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이전에 사치색으로 여기던 붉은색에 대한 반감이 수그러든 것이 원인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회화적 개성미를 보이며, 시대적 분위기의 변화로 동화백자의 제작은 점차 증가하여 청화와 철화 등과 함께 장식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구연이 넓고 밖으로 말려 도톰하며 짧은 목에 어깨에서 각이 져 동체가 십각을 이루는 다각호(多角壺)이다. 어깨 부분에 산화동을 안료로 전면으로 길게 뻗은 연당초문을 활달하게 표현하였다. 동체의 네 곳에는 이중원을 구획하여 그 안에 간략하게 산수문과 새를 그려 넣었다. 동화의 발색은 짙은 자주색을 띠며 유색은 회청색을 띠고 유빙열(釉氷裂)이 나 있다. 이러한 다각호의 전통은 18세기 전반 금사리요의 작품에서 보이기 시작하며, 18세기 후반부터는 청화의 다각호나, 동화의 다각호 또는 석간주의 다각호가 유행처럼 많이 제작되었다.
굽다리에는 모래 받침으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백자 동화원형문각호의 중앙에 보이는 문양은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백자 청화비조문 표형병과 유사한데, 백자 동화원형문각호의 새 문양이 조금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이에 비해 백자 청화비조문 표형병 하단에 표현된 문양은 마치 두 개의 가지가 뻗어나간 난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백자는 기형과 장식에서 도자사적 의의를 지닌다. 십각을 이루는 형태는 18세기 후반 이후 등장하는 매우 드문 것으로, 조선 후기 백자의 변형을 잘 보여주는 중국풍 작품이다. 또한 산화동을 사용한 동화백자는 안료의 특성상 발색을 내기가 어렵고, 적색을 잘 선호하지 않았던 탓에 그 희소성을 지니므로 이 작품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