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대형의 백자 항아리이다. 유백색의 유조에 높이 44㎝, 몸통 지름이 42㎝에 달하는 대형의 항아리로 몸통의 둥근 곡선과 풍만한 형태가 마치 둥근 달과 같아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이 유백색의 대형 백자 달항아리는 구연부가 짧고 약 45° 정도 경사져 있어 몸체의 곡선이 둥글고 부드럽게 처리되어 전체적인 형태가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다. 유색은 우윳빛에 가까운 유백색으로 아마도 경기도 광주에 위치했던 사옹원 분원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백자 달항아리와 같이 크기가 큰 항아리는 다른 그릇처럼 물레에서 한 번에 그 모양을 뽑아내기에 어렵다. 이는 조선 백토가 본래 가지고 있는 강도와 점력이 센 반면, 불에 견디는 힘, 즉 내화도는 낮아서 소성 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형 기물들은 대개 구연부 쪽의 윗부분과 굽을 포함한 하부를 따로 제작한 후, 두 부분을 이어 붙이는 접합기법으로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제작법은 내면에 남아 있는 상하접합의 흔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백자 달항아리는 위의 상하접합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몸체 외면 중심부의 이어붙인 부분에 일그러짐이 거의 없어 대형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달항아리는 제작 기법에 있어서 옹기 기법의 채용과 옹기와 유사한 기형 특성, 당대를 휩쓴 심미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18세기의 대표적 기형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태적 특징은 이후 19세기 들어서는 달항아리와 같은 원호를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즉 수요층 미감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 생각된다. 현재 이러한 달항아리는 국내외에 상당수 전세되기는 하나 아쉽게도 편년을 판단할 수 있는 유물은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조선 후기 새로이 등장하여 17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크게 유행한 달항아리는 유백색의 유조에 풍만한 형태와 곡선미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조선 특유의 심미안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그 높이가 40㎝ 이상으로 이러한 대호(大壺)의 제작이 가능할 수 있도록 상하접합기술을 채택하여 조선백자의 낮은 내화도라는 태생적인 한계성을 극복하였다. 즉 이 백자 달항아리는 유색이 가져다 주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기형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 풍만함이라는 조선만의 미적 특성이 당시 도자제작의 신기술에 녹아든 예술적 ·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